그러나 14일 베이징 주재 일본대사관이 아나미(阿南) 대사의 발언내용이라고 공표한 것은 이렇다. “탈북자는 중국에 불법입국한 자가 많은데, 대사관 내에 들어온 이상은 인도적 견지에서 보호하고 제3국으로의 이동 등 적절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한편 테러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경계를 한층 엄중히 하는 것도 당연하며, 수상한 자가 대사관 부지에 허가 없이 침입하려 할 경우에는 저지해 문 밖에서 사정을 청취해야 한다.” 만일 이 발표가 사실이라면 국가기관으로서 대사에게 도덕적 비난을 가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을 것이다.
▼탈북자 인권 자유 못본 척▼
이 연장선상에서 일본 외교의 이중성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고 현재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조감하자면 연행과정에 일본 부영사들의 ‘동의’를 얻었다는 중국 외교부와 이를 부인하는 일본 외무성이 외교적 공방을 계속하고 있으며, 이들 사이의 외교 설전(舌戰)에 원인(遠因)과 근인(近因)을 제공한 한국과 북한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 형국이다.
진실을 갈구하고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관전자들에게는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이 동북아의 말의 전쟁은 외교적 절충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중일 양국은 상대방이 명백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진지하게 인식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국제법 위반이라며 원상복귀를 요구하는 일본이나 자국의 공식발표를 부인하는 데 불쾌하게 생각하는 중국 모두 설전을 오래 끌어 인권이나 자유 등 국제사회의 규범으로 재단되고 싶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그러한 타협이 추방을 통한 ‘인도주의’의 실현, 즉 체포된 5인의 망명 희망자에게도 유리할 것이다. 일본 외교의 이중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따라서 일본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겠지만, 그것을 되풀이해 읊어댐으로써 얻는 실익이 없다는 사실을 동북아 관련 국가들은 잘 알고 있다.
이번 사건의 공방과정에 분명히 드러난 것은 현재 일본의 외교가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아니라 국가적 도덕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적 도덕, 즉 좌표의 상실은 자국민은 물론 이웃 국가에까지 해악을 미칠 수 있다. 13일 일본 외무성이 발표한 ‘선양총영사관 사건 조사결과’를 보면 일본외교는 이중적이 아니라 인간적 국가적 도덕적 결핍증까지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건 당일 일본의 부영사들이 중국 관원들에게 감사의 뜻까지 표했다는 아주 구체적인 중국의 발표에 비해 일 외무성의 조사결과는 매우 애매한 기술로 일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총영사관의 대응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문장에는 인간도덕이나 국가도덕의 그 어떤 편린도 찾아볼 수 없다.
예를 들어 외무성의 조사결과서가 ‘이번 조사를 통해 판명된 것’, 즉 총영사관의 문제점으로 들고 있는 것 가운데 첫 번째는 ‘의식면에서의 문제점’이다. 그것은 탈북 망명의 문제가 동북아의 국제적 이슈로 이미 부각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의 부족이 아니라, 단지 ‘긴급사태에 대한 대응의식의 희박함’이었다는 것이다. ‘지휘명령 계통의 문제점’이라는 것도 대사 또는 외무성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랐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인 경비원과 일본인 직원 사이의 보고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 공관은 어떻게 했을까▼
더욱 가관인 것은 이러한 사태의 발생원인 가운데 구체적으로 ‘경비원 수가 부족했고 경비체제가 불비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망명자의 인권이나 자유에 대한 인간적 차원의 동정심을 국가기관의 보고서에서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의 대외기관으로서의 도덕성이나 프로페셔널리즘의 결락(缺落), 국제적 이슈에 관한 문제의식의 부족, 형식주의에 물든 책임전가가 현재 일본 외교의 모습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일본 외교의 비도덕성에 돌을 던지기 전에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부분도 없지 않다. 탈북 주민들이 왜 재외 한국공관이 아닌 외국공관으로 달려가는 것인지, 그리고 일본공관이 아니라 한국공관에서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면 어떤 상황이 전개되었을까 하는 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웅현 고려대 대학원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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