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자 洪眞熙(홍진희·28)씨 일가족의 탈북은 가족을 서울로 데려 오겠다는 홍씨의 끈질긴 집념에 중국 후원자들과 함남도민회의 동포애가 뒷받침 돼 이뤄낸 한편의 휴먼드라마였다. 홍씨의 어머니 주영희씨(50)와 두 동생 경화(25) 진명씨(21)가 마침내 동토를 탈출해 중국 연길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날아든 것은 지난달 20일. 입술이 바짝바짝 타고 피를 말리는 한달간의 「비밀작전」끝에 성사시킨 귀순자 가족의 첫 북한탈출이었다.》
[김세원 기자] 지난해 1월 서울에 정착한 홍씨는 북한을 드나들며 보따리장사를 하는 조선족을 통해 자신의 귀순으로 가족이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아오지탄광」이나 다름없는 호천으로 강제이주된 사실을 확인하고 가족탈출을 추진했다.
홍씨 자신도 서울에 오기까지 숱한 역경을 넘었다. 중국으로 탈출한 후 두 번이나 탈북자수용소에 갇혔다가 구사일생으로 탈출했고 95년 4월 바다를 헤엄쳐 홍콩에 입국하자마자 불법체류자로 붙잡혀 교도소에서 6개월을 보냈었다.
홍씨는 인민군 외화벌이 업체인 인민군 제2군단 수산기지 함흥수산사업소 지도원으로 일하면서 중국을 자주 드나들었고 서울에 오기 전까지 2년동안 중국에서 보따리장사를 하면서 연명한 경험이 있었다.
홍씨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가족을 탈출시키는 데 자신이 이용했던 루트를 다시 밟기로 했다. 사실 북한 황장엽비서의 망명으로 중국과 북한의 사이가 불편해진데다 곳곳에 북한 공안요원의 감시가 시퍼런 상황에서 중국어는 커녕 중국 지리도 모르는 일가족 3명을 탈출시킨다는 것은 생명을 건 도박이었다.
귀순자의 신분이라 해외로 나갈 수 없은 홍씨는 중국의 후원자들과 연락을 취하고 그들을 움직이기 위해 정부로부터 받은 정착금 2천여만원을 모두 써버렸다.
홍씨는 가족들이 천진을 거쳐 중국 심천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지난 13일 함남중앙도민회 사무국을 찾아가 이 사실을 알리고 지원을 요청했다. 심천에서 홍콩까지는 자동차로 한 시간도 걸리지 않지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경계」를 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 만큼이나 어려웠다.
도민회측은 다음날 열린 이북7개도민회 의장단회의 석상에서 이 사실을 보고했다. 7개도민회 의장단은 즉석에서 5백만원을 홍씨에게 주기로 만장일치로 합의, 탈출비용이 마련됐다.
온라인으로 중국의 후원자에게 돈이 부쳐지고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가족들이 밀항선을 타고 홍콩에 도착했다는 낭보가 지난 22일 저녁 홍씨에게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