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윤씨가 밝힌 ‘스페인대사관 진입 작전’

  • 입력 2002년 3월 17일 18시 12분


탈북자들의 중국 베이징(北京)주재 스페인 대사관 진입 사건을 현지에서 지원한 ‘피랍 탈북자 인권과 구명을 위한 시민연대’ 도희윤(都希侖) 대변인은 17일 귀국, 탈북자들이 스페인 대사관에 전격 진입하기까지의 긴박했던 과정을 소상하게 공개했다.

도씨는 11일 중국 옌볜(延邊)에 있다가 국내 본부에서 연락을 받고 13일 베이징에 급파돼 탈북자들의 망명을 지원했으며 이들이 대사관에 진입할 때 현장을 지켜봤다.

▽대사관 진입까지의 과정〓국내외 탈북자 관련 단체들은 올해 초 대상자 25명을 선정한 뒤 본격적인 계획 수립에 들어갔다. 거사일은 대사관 경비가 가장 허술한 요일로 잡기로 하고 몇몇 대사관을 현장 답사했다. ‘대사관 진입’이라는 방법은 일찌감치 결정됐지만 어느 대사관에 진입할지, 어떤 방식으로 진입할지를 결정하느라 막판까지 진통을 겪었다.

도씨가 베이징에 도착한 것은 ‘거사’ 전날인 13일 오후 7시45분. 중국인이 운영하는 한 음식점에는 25명의 탈북자 전원과 10여명의 단체 활동가들이 모여 있었다. 12일 각기 다른 방법으로 베이징에 모인 탈북자들은 이후 일체의 행동을 함께 했다.

도씨는 “식당에 모인 탈북자들은 푸짐하게 마련된 저녁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긴장돼 있었다”며 “다른 활동가들로부터 당초 독일 대사관에서 스페인 대사관으로 대상이 바뀌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고심 끝에 이날 오후 9시가 넘어서야 대사관 진입 방법을 확정하고 다음날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헤어졌다. 이들은 14일 오전 9시반경 베이징 시내에서 다시 모였으며 탈북자들은 오전 9시45분경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했다.

▽진입 20분 전에 진입 방법 바꿔〓대사관 진입은 당초 외국인 활동가가 탈북자들을 대사관 앞까지 안내한 뒤 경비병을 붙잡고 있는 동안 탈북자들이 대사관에 진입하는 것으로 계획됐었다. 그러나 당일 이 외국인이 현장에 나타나지 않아 계획이 바뀌었다.

도씨는 “탈북자들은 스페인 대사관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상태였고 누가 경비병을 붙잡을 것인지 선택하기가 어려웠다”며 “할 수 없이 탈북자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살신성인할 사람을 결정하라고 맡겼다”고 말했다.

결국 탈북자들이 논의 끝에 체격이 건장한 사람을 뽑아 경비병을 붙잡는 일을 맡기기로 하고 ‘거사’를 감행했다는 것.

현장을 지켜본 도씨는 “혹시 스페인 대사관을 찾지 못할까 봐 걱정했는데 외국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대사관 앞에 대기하는 바람에 탈북자들이 쉽게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도씨는 “탈북자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탈북자들을 치장하는데도 비용이 많이 든 것 같다”며 “베이징에 들어가기 전에 베이징 중산층으로 보이도록 옷을 사서 입혔고 관광객으로 위장하기 위해 일괄적으로 모자도 구입했으며 남자아이에게 목걸이를 걸어주고 시계도 채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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