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덕민]정부 ‘원자력 외교’ 문제있다

  • 입력 2004년 9월 9일 1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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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안타깝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대한 사전 보고 없이 원자력연구소가 행한 우라늄 분리실험이 심각한 파장을 국내외에 불러일으키고 있다. 20년 전의 플루토늄 추출보도도 나오고 있다. 외신은 연일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우리에 대한 실망감을 표출하고 있다. 사태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日은 美와 협상 ‘제한없는 연구’▼

이번 사건은 국익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첫째, 북한 핵 포기를 끌어내야 할 중대한 시점에서 국제사회의 전열을 흐트러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예상대로 북한은 6자회담을 보이콧할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래도 한국이 동맹국인가’라는 비난도 들려온다. 둘째, 사반세기 공든 탑이 무너졌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해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어야 원자력 관련 물질과 첨단기술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이 가능하다. 우리는 철저한 비핵정책을 바탕으로 사반세기 평화적 이용을 통해 국제적 신용을 얻어가는 상황이었다. 이번 사건은 우리의 신용을 원점으로 돌려버릴 정도의 파괴력을 갖고 있다. 화가 치밀어 오를 만큼 유감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과학자들이 탐구를 목적으로 한 실험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실험도 핵물질과 기술을 제공한 나라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이는 과학자들의 잘못이 아니다. 정부와 정치인, 그리고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한국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서 세계 유수의 선진국이다.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은 19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앞선 고유의 경수로 모델을 갖고 있다. 과학자들의 피와 땀의 결과다.

우리가 쓰는 전기의 40% 이상을 원자력으로 충당하고 있다. 원자력산업의 국내외적 환경을 생각한다면 기적 같은 일이다. 국민은 원자력이라고 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며 과학자들이 처한 가혹한 환경에 무관심하다. 원자력 분야의 경쟁국인 일본 과학자들은 우라늄 농축, 플루토늄과 관련된 민감한 실험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반면 우리 과학자들에게 그것은 금단(禁斷)의 영역이다. 핵물질을 사용한 실험은 하나하나 사전허가를 받고 진행해야 한다. 자유로이 실험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치명적 결함이다.

왜 우리 과학자들은 차별을 받고 있는가. 원자력은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매우 민감한 분야다. 따라서 국제관례는 원자력 관련 물질과 기술을 제공한 국가는 이를 수용한 국가에 대해 평화적 이용을 감시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예를 들어, 한미간에도 원자력 협정을 통해 일일이 미국의 허가와 감시를 받도록 돼 있다. 사실 일본도 80년대 말까지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철저한 평화적 이용을 통해 국제적 신용을 쌓아가면서 정치가, 외교관, 과학자가 혼연일체가 되어 미국과 원자력 협정을 개정하는 피눈물 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일본은 ‘포괄적 사전 동의’를 얻어내 ‘제한 없는 연구’가 가능하게 됐다. 일본의 사례는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받는 차별은 미국 탓이 아닌 것이다. 우리도 진작부터 조야가 모두 나서 협정 개정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국제사회 신뢰 다시 쌓아야▼

원자력은 꿈의 산업이다. 우리가 처한 에너지 환경은 악화 일로다. 유가 50달러 시대에 살고 있다. 석유수입국으로 전락한 중국은 조만간 28기에 달하는 원자력발전소를 지을 계획이다. 1000억달러 규모의 황금시장이 열리고 있다. 경쟁 상대국은 국가원수가 나서 치열한 세일즈전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도리가 없다.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서 묵묵히 평화적 이용을 통해 신용을 쌓아가자. 모두가 관심을 갖고, 과학자들이 보다 자유롭고 활발하게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자.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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