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수도 이전 반대 집회에 서울시 예산이 불법 지원됐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를 이 시장의 ‘대권욕’과 연관시켰다. 이 시장은 수도 이전 반대를 거듭 천명하면서도 “관제데모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 시장을 전폭 지원했다.
수도 이전의 용어를 놓고도 부닥쳤다. 이 시장은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옮기면 사실상 천도”라며 “국민에게 의사를 물어야 한다”고 국민투표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그러자 열린우리당 강창일(姜昌一) 의원은 “천도는 봉건시대 왕권 이미지를 떠올리고, 선동적 여론 조작의 가능성이 있다”며 “법에 명시된 대로 행정수도 이전이란 용어를 쓰라”고 다그쳤다.
또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지난달 17일의 수도 이전 반대 집회에 관해 “서울시가 예산을 지원한 관제데모 아니냐”고 추궁하자 이 시장은 “시장이 공무원을 동원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민제데모’라는 말이 옳을 것”이라고 맞섰다. 한나라당 이명규(李明奎) 의원은 “서울시민의 70%가 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관제데모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명박 죽이기’이자 ‘서울시민 죽이기’”라며 이 시장을 거들었다.
열린우리당 우제항(禹濟恒) 의원은 “관제데모 동원을 입증하는 5건의 서울시 및 일부 구청 문건을 입수했다”며 이를 공개했다. 서울시 행정국장과 행정과장 이름으로 된 이들 문건 일부는 ‘각 구별 200여명이 집결지로 모인 후 행사장으로 참석할 수 있도록 조치 바람’ ‘자치구에서는 당일 행사참여 안내에 만전을 기해 주기 바람’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국장과 과장의 서명이나 직인은 없었다.
이에 대해 신연희 행정국장은 “그런 공문을 보낸 적 없다”고 부인했다. 이 시장은 “그게 시장이 지시했다는 증거는 아니지 않느냐”면서 “공문서 위조를 밝혀내기 위해 수사 의뢰를 해달라”고 개입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최규식(崔奎植) 의원은 “관련 공무원을 문책하라”고 요구했고 홍미영(洪美英) 의원은 “이 시장의 답변이 거짓으로 드러날 경우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으로서 도덕성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몰아붙였다. 강창일 의원은 “이 시장이 대권 꿈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앙정부와 대립하는 것으로 보여 서울시민이 불안해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시장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잇따라 ‘대권 꿈’을 거론하면서 공세를 펼치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을 끌어들여 맞불을 놓았다. 그는 “공무원은 정치행사에 참여해선 안 된다고 누차 강조했지만 시의회나 구의회가 시장의 말을 듣지 않는다”며 “노 대통령도 ‘공무원이 정말 말 안 듣는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또 “노 대통령이 민주화에 기여한 걸로 국민이 알고 있다. 수도 이전 반대에 대한 국민 여론이 높아지면 대통령도 수용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정부와의 대결은 원치 않는다”면서도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수도 이전 반대에 나서겠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서울은 외국기업 유치 활동을 하고 있는데 국정홍보처 광고는 ‘이래도 서울에 투자하시겠습니까’라고 해 충격을 받았다. 기가 차다”며 정부의 수도 이전 홍보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 시장은 한나라당 이재창(李在昌) 의원이 “600년 된 수도가 이전할 경우 브랜드 가치의 손실은 얼마냐”고 묻자 “자료에 의하면 수도의 가치는 400조원”이라고 답했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李시장 답변 태도▼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으로서….”(열린우리당 홍미영 의원)
“국정감사의 정신에 맞게 질문해 달라.”(이명박 서울시장)
4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의 국정감사를 받은 이 시장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거센 추궁을 시종 웃음으로 받아넘기는 여유를 보이며 때로 정면대결도 서슴지 않았다. 사실관계가 다른 질문이 나오면 즉각 반박에 나섰고, 충고성 답변을 하기도 했다.
홍 의원이 질의 후 “시간이 없다”며 답변을 가로막자 이 시장은 “15분 질문에 답변은 30초도 안된다. 사실과 다른 질문이 많은데, 국민들은 홍 의원 말만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항의해 “공평하게 하라”는 이용희(李龍熙) 행정자치위원장의 중재를 이끌어냈다.
노현송(盧顯松) 의원이 수도 이전 반대집회 동원 의혹과 관련한 용산구청장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부하에게 책임을 돌리지 말라”고 다그치자, 이 시장은 “구청장은 시장의 부하가 아니다. 말씀 삼가시라”고 반박했다.
수도이전에 대해서는 “2030년까지 50만명을 옮긴다는데, 그게 서울의 문제점 해결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느냐”며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가끔은 “질문이 일방적이다. 서로 존중하자”고 제의하거나 “대답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며 일축하기도 했다.
이 시장이 격한 논쟁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자 유인태(柳寅泰) 의원은 “뉴스메이커가 된 것이 싫지 않은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이 시장은 “생중계를 한다고 해서 계속 웃고 있다”고 받아넘겼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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