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즉각 사표를 반려했지만 국방부 검찰단의 유례없는 육군본부 압수수색에 이은 육군총장의 전역지원서 제출의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항명이냐, 외압이냐?=일부 장성은 남 총장이 내년 4월 초 임기 만료를 앞두고 4개월여 더 자리를 지키는 것보다 육군에 대한 무차별적인 수사에 경종을 울리고, 군 내의 반발을 대변하기 위해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육군 A소장은 “남 총장은 취임 직후부터 인사의 투명성을 강조하며 진급자 선발위원회와 인사제청위원회 등 각종 시스템을 정비해 왔다”며 “그런데도 괴문서 사건이 터지고 그 내용이 사실인 것처럼 육군이 공격 당하자 자존심이 크게 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남 총장은 “괴문서 내용들은 억측이라고 생각한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남 총장의 사표 제출이 군 안팎의 여론에 떠밀린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9월 남 총장은 청와대와 윤광웅(尹光雄) 국방부 장관이 추진 중인 국방부 문민화에 대해 “정중부의 난이 왜 일어났는지 아느냐. 문신들이 무신을 홀대했기 때문이다”고 발언했다는 소문이 퍼져 큰 곤욕을 치렀다. 그러나 남 총장은 발언 사실을 부인했고, 결국 사실무근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럼에도 이 사건을 계기로 여권에서는 남 총장을 반개혁 세력으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소속의 최연희(崔鉛熙)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과거 법사위에 남 총장이 출석했을 때 여당이 남 총장에게 적의를 나타내며 인신공격적인 질의를 해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수사는 정당했나?=군 검찰은 육본 압수수색은 정당한 근거를 갖고 합법적인 절차를 거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2일 압수수색 이전인 12일 대통령민정수석실로부터 ‘음주운전 전력자의 부적격 진급 제보’를 전달받았으며, 15일부터 내사를 벌여 왔다는 것.
군 검찰 관계자는 “신빙성이 낮은 괴문서 때문에 수사하는 것이 아니라 혐의가 있는 음주운전 전력자의 진급을 수사하고 있다”며 “압수수색은 육군의 수사 비협조 때문에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육군 관계자는 “군 검찰이 압수수색의 정치적 의미를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되며 그 전에 헌병대 등에서 충분히 조사할 수 있었다”고 반박했다.
▽갈등의 신호탄?=육군 장성들 사이에서는 남 총장의 사표 제출을 초래한 군 검찰의 수사가 청와대의 제보와 윤 장관의 승인으로 시작됐다는 생각이 폭넓게 퍼져 있다. 특히 군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군사법원에 청구하기 전 윤 장관에게 사전 보고를 했고, 이를 윤 장관이 승인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분위기는 더욱 심각해졌다. 육군 관계자는 “윤 장관의 행동은 군의 사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배신감을 느낀다’는 말까지 들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육군은 윤 장관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고 일단 군 검찰에 화살을 돌리고 있다. 일각에서 군 검찰 폐지론까지 나오고 있어 당분간 육군에 대한 군 검찰의 각종 수사는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더구나 이번 국방부와 육군의 갈등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앞으로 2, 3년 내에 국방부가 문민화되면 국방부의 문민문화와 육군의 군인문화가 곳곳에서 충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갈등 가능성은 앞으로 진행될 협력적 자주국방 추진, 북한에 대한 주적(主敵) 개념 변화, 주한미군의 역할 변환, 국방획득청 운영 등 굵직한 이슈에서 한국군의 능력을 떨어뜨리는 복병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번 일로 육군 인사 비리 의혹이 규명되고, 인사시스템이 더욱 투명해진다는 득(得)이 있을지는 몰라도 이번 사태로 잃을 국익이 훨씬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군 장성 인사 괴문서 관련 일지▼
△10월 15일
육군 장성 진급인사 단행
△11월 22일
국방부 인근 군인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장성 진급인사 비리 의혹 담은 괴문서 발견
국방부 검찰단, 창군 이래 처음으로 육군본부에 대해 압수수색 실시
△11월 24일
군 장성들 반발.
열린우리당 안영근 제2정조위원장, “군 인사 전반에 대한 국정 조사 추진 검토” 밝혀
△11월 25일
남재준 육군참모총장, 전격 사의 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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