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군에 닥친 여러 불행을 지켜보면서 갖게 된 의문들이다. 군 관련 사건들이 대부분 명쾌하게 정리되지 못하고 의혹을 남긴 채 봉합되면서 우려는 더욱 깊어진다.
군은 짧게 잡아도 7월 북한 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이후 줄곧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다. ‘사고 친 게’ 한두 번이 아니니 혼란의 장기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일이 터질 때마다 어김없이 군의 명예는 떨어졌다.
▼군의 존재 이유가 흔들린다▼
군을 바라보는 국민의 심경이 편할 리 없다. 군이야말로 대다수 국민에게 남의 일이 아니지 않은가. 세금을 내는 국민은 당연히 군에 대해 한마디 할 자격이 있다. 병역의무를 다한 국민이나 군에 자녀를 보낸 부모들도 군의 현재와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군 스스로 혼란을 극복하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다면 오죽 좋으련만 상황은 그런 것 같지 않다. 군 내부에서조차 군이 겪는 불행에 대해 엇갈리는 소리가 나온다. 당장 군 인사비리 수사만 해도 그렇다. 최초의 육군본부 압수수색이라는 초강수를 둔 군 검찰의 말을 들어야 하나, 장군 진급심사에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는 육군 참모총장의 말을 믿어야 하나.
군이 겪는 혼란은 각각의 사건이 별건이 아니고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 압축하면 군의 존재 이유가 흔들린다는 것이 혼란의 핵심이다. 우리 군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한국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막강한 군을 갖게 된 것은 남북 분단 때문이다. 54년 전 전쟁을 일으켰던 북한이 여전히 강력한 군대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항세력을 키워 온 것이다.
군이 직면한 혼란 가운데 주적(主敵) 개념 폐기는 남북간 군사적 대치상황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주적 논란은 4년 전 발행된 국방백서에서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한다’는 국방 목표에 대해 ‘주적인 북한의 현실적 군사위협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모든 외부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는 것을 말한다’고 설명하면서 딱 한번 언급한 ‘주적’을 삭제하자는 차원이 아니다. 군의 존재 이유를 흔드는 근본적 변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이자 반발인 것이다. 첫 남북 정상회담의 흥분 속에서 만들어진 국방백서 이상으로 대북관(對北觀)을 부드럽게 할 타당한 이유가 있는지 묻는 것이다.
정부가 주적 폐기에 몰두하다 보니 북한과 부닥칠 때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7월 NLL 충돌 때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처가 아니라 보고 누락이 문제돼 장관까지 경질된 것은 군에는 견디기 힘든 수모였다. 비무장지대의 3중 철책선 절단사건은 명백한 증거도 없는데 ‘민간인 월북’으로 처리됐고 고위 관련자들은 솜방망이 징계를 받았다. 군도 문제지만, 보고 누락을 그토록 심각하게 여기는 정부가 북한의 도발과 구멍 뚫린 철책선에는 왜 그렇게 관대한가.
▼정부의 이중기준이 문제다▼
북한을 주적의 자리에서 내려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국방력을 줄여도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현실은 정부부터 거꾸로 가고 있다. 국회 예산 심의가 끝나지 않아 다소의 변화는 있겠지만 정부는 금년보다 9.9%가 늘어난 20조8226억원의 국방예산을 요청했다. 국회 국방위원회는 사병 월급을 무려 67.6% 인상하는 선심까지 썼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라’고 하는 것인가. 그러나 군이 존재 이유를 잃으면 ‘돈 먹는 하마’가 된다. 덩치는 크지만 목표가 없고 피아(彼我) 구분을 못하는 군을 누가 두려워하겠는가.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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