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일협정 공개와 한일 정부의 책임

  • 입력 2005년 1월 17일 18시 02분


한일협정 문서 공개는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 같다. 관련 문서 57권 가운데 불과 5권이 공개됐지만 어디까지 파장이 미칠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폭발력이 내재돼 있다. 협상의 적절성에 대한 의문에서 한국과 일본 정부를 겨냥한 책임 추궁에 이르기까지 온갖 반응이 쏟아진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문서 공개는 한일협정의 전모를 밝히는 첫 단추가 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정부는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나머지 문서를 공개하고, 일본 또한 관련 자료를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양국의 비극적인 과거를 뒤늦게나마 정리하는 첩경이다.

한일협정의 문제점이 확인되기는 했지만 외교행위를 무효화하고 재협상을 하자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에 쫓겨 졸속으로, 주는 자와 받는 자의 불평등한 지위 때문에 굴욕적으로 맺어진 협정의 잘못을 보완할 수는 있다. 군대 위안부만 해도 협정체결 과정에서 양국이 거론조차 하지 않은 일본의 전쟁범죄가 아닌가.

국내적으로는 일제 강점기의 피해자에 대한 보상 문제를 정리해야 한다. 정부가 100만이 넘는 피해자에 대한 보상금 명목으로 5억 달러의 돈을 받은 뒤 사망자 8000여 명에게 25억여 원만 보상한 경위를 밝히고 납득할 만한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경제개발에 한 푼이 아쉬운 시기였지만 ‘(한국 측은) 앞으로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다’는 내용을 문서에 삽입해 결과적으로 일본에 포괄적인 면죄부를 준 경위도 밝혀야 한다.

일본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일본은 그동안 위안부 등의 배상 요구에 대해 ‘청구권 소멸’로 맞서 왔으나 협상 당시에는 ‘배상이 아닌 경제협력’을 줄곧 강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이 진심으로 전쟁범죄를 뉘우친다면 부실한 협정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2차 대전 후 50년이 지나도 나치 관련자들을 처벌하고 강제노역에 동원된 외국인에게 배상하는 독일의 선례를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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