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의원들의 표정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소속 의원을 지역별(서울-수도권-강원-충청, 대구-경북, 부산-경남)로 나눠 하루씩 회의실을 지키는데 아직까지 불참자가 거의 없다고 한다.
각 조는 다시 두 개 ‘소조’로 나뉘어 제1소조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제2소조는 오후 8시부터 밤을 새워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지킨다.
이혜훈(李惠薰) 의원 등 일부 여성 의원들까지 밤샘 농성을 자청했다.
‘근무 태도’가 느슨해질 낮 시간에는 지도부가 나서기도 한다. 13일 오후에는 김덕룡(金德龍) 원내대표가 위원장 주변에서 이재오(李在五) 의원 등과 함께 자리를 지켰고, 정병국(鄭柄國) 이재웅(李在雄) 의원 등 20여 명이 신문을 보거나 밀린 잠을 자며 함께했다.
이 바람에 근엄하던 법사위 회의실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 13일 찾은 회의실에는 어지럽게 배치된 의자와 책상 위에 먹다 남은 생수통과 사과 귤 등 과일이 널려 있었다.
크래커나 초콜릿 등 간식이 담겨 있는 상자도 뒹굴고 있었다. 회의실로 들어서는 3개의 문 중 맨 뒷문은 책상을 끼워 놓는 바람에 일부 파손돼 있었다.
농성 장기화에 따른 불만도 새어 나온다. 두 번 밤을 새운 한 초선 의원은 “처음에는 도시락을 시켜 먹었는데 이제는 돌아가며 나가서 먹는다”며 “연말이라 지역구 행사도 챙겨야하는데 곤혹스럽다”고 토로했다. 무엇보다 큰 걱정은 이번 농성이 ‘민생을 팽개친 정쟁’으로 비치는 것이다.
한 중진 의원은 법사위 회의실 뒷면에 걸린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선생의 흠흠신서(欽欽新書) 서문을 가리키며 “국민들에게는 미안하다”고 토로했다.
서문에는 “…비참함과 고통으로 울부짖는 백성의 소리를 듣고도 구제할 줄 모르니 화근이 깊어진다”고 쓰여 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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