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슬로모션]靑政 고위인사 잇단 사의

  • 입력 2005년 1월 27일 18시 14분


여권 고위 관계자는 27일 “청와대가 꼭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거절하는 경우가 많고, ‘이제 그만하겠다’고 스스로 손들고 나오는 장관 때문에 고민이다”고 털어놨다. 청와대와 내각의 고위직 인사들이 강도 높은 업무 때문에 사의를 표명하는 일이 최근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날 사표가 수리된 김병일(金炳日) 기획예산처 장관은 지난해 12월 거의 한 달 내내 국회에서 ‘별을 보며’ 퇴근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연일 열렸고 막판 국회의원들이 예산조정을 하는 계수조정심사위원회 때문에 국회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던 것. 국회가 국가보안법 등 4개 쟁점 법안 처리 문제로 파행을 빚었을 때도 꼼짝 않고 대기해야 했다.

올해 예산심의를 마친 1일 오전 2시 찬 밤공기를 맞으면서 국회를 나선 김 장관은 “이제 짐을 벗게 됐다”면서 홀가분해 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지난해 9월에는 맹장수술을 받기도 했다.

조만간 청와대를 떠날 이병완(李炳浣)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 역시 ‘건강상 이유’로 2월 중 짐을 싼다. 2년 동안 청와대에서 근무하며 몸이 망가진 그는 당분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할 계획이다.

문재인(文在寅)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또한 과도한 업무부담 때문에 치아를 10여개나 뽑을 정도로 건강이 나빠져 한때 청와대를 떠났었다. 1년 전 사표를 냈던 박봉흠(朴奉欽) 전 대통령정책실장은 최근에야 건강을 회복했다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로 떠난 권오규(權五奎) 전 대통령정책수석비서관도 건강이 나빠져 대통령이 붙잡지 못했다.

김병준(金秉準) 대통령정책실장은 지난해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 시절 “1년 동안 봉사했으니 이제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대통령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박 전 실장이 중도하차 하는 바람에 떠나지 못하고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경제부처의 한 간부는 “화려한 듯하지만 장관이 예전처럼 목에 힘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라고 말했다. 특권은 줄어들고 책임은 더욱 늘어난 권부(權府)의 세태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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