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사건 재심 시작…고문여부가 최대 쟁점

  • 입력 2006년 3월 20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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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고 판결 후 18시간 만에 사형당한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인혁당)’ 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한 재심 첫 공판이 20일 열린다.

인혁당 사건 재심에서는 피고인들에게 사형을 선고한 비상보통군법회의의 피의자 신문조서 등 수사기록이 증거능력을 갖고 있는지가 쟁점이다. 불법 고문에 의한 자백 등은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이 당시 피고인 및 참고인들의 진술 대부분이 고문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재심 개시 여부에 대한 심리를 맡았던 재판부도 의문사위의 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고문 가능성을 인정했다.

재심 공판을 진행할 검찰이 새로운 증거를 제출할지도 중요한 변수다.

서울중앙지검 안창호(安昌浩) 2차장은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의 일환에 재조사도 포함된다”며 “당시 제출된 증거의 적법성도 재검토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적극적인 의견 개진도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재심은 통상적인 재판 절차대로 진행된다.

피고인 전원이 숨진 상태에서 재판한 예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인혁당 재심은 피고인 신문 없이 곧바로 증거신청과 증인신문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 인민혁명당 사건

1차 사건은 1964년 ‘한일회담’과 ‘대일 굴욕외교’ 반대시위가 거세게 일어났던 때 발생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대학생 41명을 구속했고, 법원은 1965년 전원 유죄 판결을 내렸다. 2차 사건은 1974년의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다. 유신체제에 맞서 전국적 규모의 대학생 시위가 발생하자 중앙정보부는 “배후에 북한의 지령을 받은 인혁당 재건위가 있다”며 23명을 구속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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