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 前주한미대사 “KAL機 폭파는 北 소행”

  • 입력 2004년 7월 16일 18시 49분


제임스 릴리 전 주한 미국대사는 1987년 발생한 KAL기 폭파사건은 북한이 저지른 것이며 이 사건 때문에 북한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 포함됐다고 밝혔다.

릴리 전 대사는 또 1987년 6월항쟁 당시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을 만나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계엄 선포를 막았다고 주장했다.

릴리 전 대사는 최근 출판된 ‘중국통-아시아에서 90년 동안의 모험, 첩보, 외교’라는 제목의 회고록에서 이 같은 내용을 소개했다.

▽KAL기 폭파사건=서울이 1988년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된 뒤 북한은 올림픽 공동개최를 요구하며 한국과 협상에 들어갔으나 뒤에서는 공격을 계획했다.

1987년 11월 29일 KAL기가 실종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북한이 저지른 짓이라는 것을 알았다.

11월 31일 바레인 공항에서 폭파 용의자 두 사람이 경찰에 체포됐으며 북한의 오랜 공작원이었던 노인은 청산가리가 든 담배를 물고 즉사했다.

그러나 젊은 여성(김현희)은 이안 헨더슨 바레인 경찰서장이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손으로 빼내는 바람에 살아남았다. 헨더슨씨는 담배를 빼내다가 그녀에게 손가락을 물렸다. 그는 아직도 손가락에 상처가 남아 있다.

박수길 당시 외무부 차관은 대통령 선거 며칠 전에 김현희를 서울로 데려갔으며 이것은 김영삼 김대중 등 다른 후보보다 강경한 대북정책을 주장한 노태우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노 후보의 고위 보좌관은 김현희의 서울 도착으로 노 후보가 최소한 150만표는 더 얻었다고 박 차관에게 말했다.

▽계엄 선포 저지=한국의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던 1987년 6월 전 대통령이 계엄 선포를 하지 못하도록 레이건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청와대를 방문했다.

6월 19일 청와대에서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 그는 돌처럼 굳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레이건 대통령의 친서는 정치범 석방, 권력남용 경찰관에 대한 처벌, 언론자유 등 정치발전을 위한 추가 조치 등을 권고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상황의 심각성을 얘기하고 총리가 계엄 선포가 임박했다고 발표하면 한미동맹을 훼손할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날 오후 최광수 외무장관은 내게 전화로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알려줬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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