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장학회 강제헌납 사건’은 5·16군사정변 이후 당시 부산 지역 기업인이었던 김지태(金智泰·작고) 삼화고무 사장의 부일장학회를 강제로 국가에 헌납하게 한 사건.
부일장학회는 이후 5·16장학회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다시 정수장학회로 개명됐다. 정수장학회는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정’자와 육영수(陸英修) 여사의 ‘수’자를 합쳐 만든 이름.
헌납 과정의 강제성 여부가 핵심 쟁점이다. 서류상으로는 자진 납부로 돼 있지만 김 씨의 유가족은 군부가 빼앗아 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작년 8월에는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를 겨냥한 압박 차원에서 이 사건을 조사하다 강제 헌납을 시사하는 김 씨의 비망록을 발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 대표가 정수장학회 이사장이라는 점도 논란거리. 여권의 공세도 이 부분에 집중되고 있다. 박 대표는 정계에 입문하기 전인 1995년부터 이사장직을 맡아왔다. 정수장학회는 문화방송 주식 30%와 부산일보 주식 100%를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박 대표는 강제 헌납을 부인하면서 증거 자료를 갖고 있다고 말해왔다. 그가 이사장직 사퇴 의사를 ‘자의(自意)’라고 강조한 것이나, “법원에서 진실을 가리자”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경향신문 강제매각 사건’은 당시 군사정권이 정부에 비판적이던 경향신문을 사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른 기업에 매각한 사건.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는 1965년 4월 경향신문 이준구(李俊九) 사장 등 간부들을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했다. 신문사는 경매에 넘어갔으며 기아산업이 단독 응찰해 2억1807만 원에 낙찰받았다.
매각 과정에 중정이 개입했는지, 매각 자금이 정치자금으로 사용됐는지 여부가 쟁점이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김형욱 실종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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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수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형욱(金炯旭) 씨가 10·26사태 3주 전인 1979년 10월 7일 프랑스 파리 ‘르 그랑 세르클’ 카지노 근처에서 실종된 사건.
김 씨 실종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구구한 억측이 제기되고 있다. ‘파리에서 중정요원에게 살해돼 센 강에 버려졌다’ ‘카지노와 관련된 폭력집단이 금품을 노리고 범행을 저질렀다’ ‘한국으로 압송돼 청와대 지하실에서 총살당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장 자리를 6년 3개월 동안 지킨 김 씨는 1973년 갑작스러운 해임 직후 미국 망명길에 오르면서부터 반독재 투사를 자처했다.
박동선(朴東宣) 로비사건을 조사 중이던 미국 의회의 프레이저 청문회에 나가 박정희 정권을 성토한 그는 1979년 제3공화국과 유신정권의 비리를 폭로하는 회고록을 출간하기도 했다.
1980년대 ‘박사월’이란 필명으로 ‘김형욱 회고록’을 집필해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던 김경재(金景梓) 전 의원은 3일 김 씨 사건에 대해 “당시 차지철(車智澈) 경호실장이나 박종규(朴鍾圭) 전 경호실장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후일 박정희 대통령 살해 혐의로 사형이 집행된 중정 직원 박선호 씨가 감옥에서 “청와대 근처의 지하실에 김형욱이 끌려와 총살됐다”는 증언을 했고, 이를 민주화운동가 송모 씨(송진섭 현 안산시장)가 들은 적이 있다고도 했다.
김 전 의원은 사건의 진실을 알 수 있는 당사자로 사건 당시 주프랑스 대사관에 근무했던 이상열(李相悅) 공사(중정 소속)를 들었다. 이 씨는 10·26사태 이후 귀국해 당시 중정에 근무하던 이종찬(李鍾贊·전 국정원장) 씨에게 심문을 받았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인혁당-민청학련▼
1974년 4월 긴급조치 4호가 발표된 이후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의 저항이 거세자 당시 중앙정보부는 민청학련의 배후로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를 지목했다. 신직수(申稙秀) 당시 중정 부장은 “북한의 지령을 받은 인혁당 재건위 조직이 민청학련의 배후에서 학생시위를 조종하고 정부 전복을 기도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으로 180여 명이 긴급조치 4호와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비상보통군법회의에 구속 기소됐다. 김용원 도예종 서도원 송상진 여정남 우홍선 이수병 하재완 등 8명은 대법원의 사형 확정 판결 20여 시간 만인 1975년 4월 9일 사형이 집행됐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김대중 납치사건▼
1973년 8월 8일 야당 지도자 김대중(金大中) 씨는 일본 도쿄(東京)에서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 결성을 닷새 앞두고 괴한 6명에 의해 납치됐다.
김 씨는 이후 일본 오사카(大阪)의 한국총영사관 숙소를 거쳐 ‘용금호’라는 배로 부산으로 옮겨졌다. 이 과정에서 미국 측의 경고를 받은 범인들은 납치 129시간 만에 그를 서울 동교동 자택 부근에서 풀어줬다.
김 씨는 1972년부터 신병 치료를 위해 일본에 머물다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하자 귀국을 포기하고 반체제 활동을 벌였다. 이 때문에 박정희 정권이 그를 계획적으로 납치해 살해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사건 여파로 한일 양국의 외교관계가 일시 냉각되기도 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KAL기 폭파▼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KAL) 858기가 미얀마 상공에서 승객과 승무원 115명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는 북한 당국의 공작에 의한 공중 폭파로 결론지었다. 바그다드에서 탑승한 특수공작원 김현희(金賢姬)와 김승일(일본명 하치야 신이치·蜂谷眞一)이 폭탄을 기내에 장치한 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내렸다는 것.
체포된 김현희는 같은 해 12월 15일 서울로 압송됐다.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중부지역당 사건▼
1992년 10월 6일 당시 국가안전기획부는 ‘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간첩사건을 발표했다. 북한 권력서열 22위인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이선실(李善實·당시 70세·여)이 재야와 대학가의 주사파와 좌익세력을 규합해 과거 남로당 성격의 남한 조선노동당을 구축했다는 것이 요지였다. 중부지역당은 이선실에 의해 포섭된 황인오(黃仁五) 씨가 1991년 7월 결성한 ‘조선노동당 산하 지역당’이라고 안기부는 밝혔다. 이 사건으로 중부지역당 총책 황인오 씨, 재야 운동가 장기표(張琪杓) 씨 등 62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동백림사건▼
1967년 7월 중앙정보부는 독일과 프랑스 유학생과 예술인 등 194명이 관련된 동베를린 거점 북한 대남적화 공작단 사건을 발표했다. 이른바 ‘동백림(東伯林) 사건’.
1967년 12월 1심 재판부는 국가보안법 위반을 적용해 조영수 정규명 씨에게 사형을, 윤이상 어준 씨 등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러나 1969년 서울고법 항소심 선고에서 관련자에 대한 형량이 대폭 줄었으며, 1969년 윤이상 이응로 씨 등이 석방됐다. 당시 유학생들은 사건이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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