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줌인]고건發정계개편설

  • 입력 2005년 6월 11일 03시 27분


‘묵묵부답(默默不答) 소이부답(笑而不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지동 여전도회관 10층에 있는 고건(高建) 전 국무총리의 개인사무실로 그를 찾아갔다. 향후 정치적 행보를 묻자 돌아온 대답이 바로 이 여덟 자 대구(對句)였다.

그러면서도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 않아 운신의 폭이 좁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는 “운신의 폭은 오히려 넓다고 할 수 있지. 다만 운신을 안 할 뿐이지”라고 심경의 일단을 내비쳤다. 그러나 더 이상의 언급은 피했다.

이틀 뒤인 9일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그와 가까운 신중식(申仲植·전남 고흥-보성) 의원은 “연말 연초에 정계개편이 시작될 경우 소용돌이의 중심은 고 전 총리가 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고 전 총리는 10일 “나의 자세는 조금도 변한 게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그는 ‘운신’을 시작해야 할 시점에 들어섰고 정치권 또한 빅뱅의 출발점에 선 것으로 보인다. 그의 행보 또한 심상치 않다.

그는 11일 박준영(朴晙瑩) 전남지사가 역대 전남지사들을 초청하는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를 방문한다. 향후 정계개편이 진행될 경우 호남이 그 진원지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정가의 관심을 끌고 있다.

▽궁금한 구상=고 전 총리 측은 2006년 지방선거 또는 개헌 협상 과정에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라는 기존의 2강 구도가 깨지는 정계개편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이후 벌어질 정치권 합종연횡의 핵심 키워드는 고 전 총리라고 믿고 있다.

즉 이미 내분이 시작된 열린우리당이나 반(反)박근혜(朴槿惠) 움직임이 상존하고 있는 한나라당, 적절한 대선 후보감이 없는 민주당, 전국 정당화가 힘든 심대평(沈大平) 충남지사 중심의 중부권 신당 등 각 정치세력의 내부 사정이 복잡해 차기 대선은 현 구도로는 결코 치러질 수 없다는 것.

이에 따라 고 전 총리 측은 당분간 젊은층과의 접촉 강화를 통한 ‘이미지 정치’를 계속해 나가면서 결정적인 시기를 기다린다는 전략을 세웠다는 전언이다.

신 의원은 이와 관련해 “각계 인사와의 접촉에 적극 나서는 등 단계적 수순을 밟고 있는 상황”이라며 “올해 말 정당을 초월해 뜻이 맞는 의원 20여 명이 모여 고 전 총리를 모실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정당들의 움직임=열린우리당은 이미 ‘비등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염동연(廉東淵) 의원의 상임중앙위원직 사퇴는 그 신호탄으로 여겨지고 있다.

일부 의원들은 ‘개혁당파 배제-민주당 통합’의 그림을 오래전부터 그려 왔다. 내년 지방선거 이후를 ‘빅뱅’ 시기로 관측했지만 의외로 시기가 당겨질 수 있다. 신 의원 등 호남 출신의 ‘친고(親高)파’ 일부 의원들은 정기국회가 끝나는 연말을 주시하고 있다.

당내 중도보수파에 속하는 안영근(安泳根) 의원도 고 전 총리가 정계개편 논란의 ‘해답’이 될 것이라며 당의 간판 교체 필요성을 주장했다.

민주당은 확실한 대선주자가 없다는 사실이 당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거기에 당내 상당수 인사들과 이념적 성향이 같으면서 인적 관계가 끈끈한 고 전 총리가 인력(引力)으로 작용하고 있다.

충청신당을 모색 중인 심 지사도 고 전 총리와 조만간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무소속 정진석(鄭鎭碩) 의원은 “심 지사와 고 전 총리가 만나 나라 걱정하는 얘기를 나누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동철 정치전문기자 eastph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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