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과정에서 사업을 주도한 왕영용(王煐龍·구속) 사업개발본부장은 계약금을 보내기 전에 사업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실무 직원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오히려 이들을 사업추진팀에서 배제한 채 허위보고 등으로 사업을 강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 수사=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홍만표·洪滿杓)는 지난달 30일 왕 본부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또 왕 본부장과 함께 사업을 주도한 부동산 개발업자 전대월(全大月·구속) 하이앤드 대표가 러시아 유전개발 회사(페트로사흐사) 인수 계약을 체결하면서 모(母)회사인 알파에코사 임원에게 리베이트 명목으로 200만 달러를 주기로 이면계약까지 체결한 사실을 밝혀냈다.
▽윗선은 몰랐다?=검찰 조사 결과 철도청은 지난해 9월 30일 신광순(申光淳) 당시 차장 주재로 간부급 17명이 참석한 회의에서 사업 포기 여부를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러시아에 계약금 송금(10월 4일)을 5일 정도 앞둔 시점이다.
이 회의에서 일부 임직원은 9월 22일부터 5일간 철도청 실무직원들의 러시아 현지 방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사업 추진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본보가 입수한 당시 회의 결과 자료에도 이날 회의 안건 중 1안(案)으로 사업 포기 방안이 올라 있었다.
그러나 이 회의에서 왕 본부장은 ‘세부 실사 후 사업성이 없을 경우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계약서에도 없는 내용을 거짓으로 보고했다.
결국 왕 씨의 주장대로 이날 회의에서는 사업을 계속 추진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고 검찰은 밝혔다.
▽드러나는 실체=검찰이 왕 본부장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에 담긴 내용만 놓고 보면 이번 사건은 ‘권력형 게이트’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사업 참여 과정과 사업성 검토, 사업 무산 이후 등 모든 과정에서 핵심 관련자들의 거짓말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정치권 로비자금설이 나돌았던 전 씨 등에 대한 ‘사례비 120억 원’에 대해서도 왕 본부장은 “사례비가 아니라 사업운영비 성격이었다”고 말을 바꿨다고 검찰은 밝혔다.
그러나 아직까진 이번 사건을 단순히 몇몇 개인의 허황된 꿈이나 사기극으로 단정하긴 이르다. 특히 전 씨는 검찰 조사에서 “전 씨에게 허문석(許文錫·지질학자) 씨의 전화번호만 건네줬다”고 한 열린우리당 이광재(李光宰) 의원의 주장과 다소 차이가 있는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의원이 전화번호만 건네준 게 아니라 허 씨에게 전화를 걸어줬고, 자신이 허 씨를 만난 것도 당초 알려진 ‘호텔 커피숍’이 아니라 정치권 모 인사의 개인 사무실이었다는 것.
아직까지 이 부분에 대해선 관련자들 간 주장이 크게 엇갈려 어느 한 쪽에 무게를 두기 어렵다. 열쇠를 쥔 허 씨는 인도네시아에서 잠적한 이후 행방이 오리무중이다.
검찰은 2일 왕 본부장과 함께 유전사업을 주도한 박상조(朴商兆) 당시 철도재단 카드사업본부장을 소환해 조사하기로 했다.
또 당시 철도청장과 차장이었던 김세호(金世浩) 건설교통부 차관과 신광순 철도공사 사장을 이번 주 중 소환해 왕 본부장 등의 무리한 사업 추진 사실을 알고도 묵인하거나 방조했는지를 조사할 방침이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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