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피플]한국과 결혼 ‘파리의 연인’ 프로스트 교수

  • 입력 2005년 8월 5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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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람들이 파리에서 동양인을 만날 때 국적을 물어 보는 순서는 대부분 똑같다. 가장 먼저 일본인이냐고 물어 본다. 아니라고 하면 “그러면 중국인?”이라는 질문이 뒤따른다. 역시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면 “그러면 어느 나라냐”라고 묻는다. “한국인이냐”는 질문을 세 번째로 하는 프랑스 사람은 찾기 힘들다. 이런 현실은 학계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프랑스 대학에서 일본학은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고, 중국학은 최근 지원자가 폭증하는 양상을 보인다. 반면 한국학은 갈수록 쇠락하는 기미가 뚜렷하다.》

파리 7대학의 한국학과에서 프랑스 학생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마르탱 프로스트(53) 교수는 이런 현실이 늘 안타깝다. 지난해 파리 7대학의 일본학과, 중국학과 신입생은 200명이었지만 한국학과 신입생은 50명에 불과했다. 일본학과와 중국학과는 지원자가 많아 절반밖에 입학시키지 못했는데도 그렇다.

프로스트 교수는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아니 현상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닌다. 강의와 연구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프랑스와 한국의 관계 당국에 편지를 보내고 관계자를 만나 도움을 요청하는 데 몽땅 투입한다.

프로스트 교수는 최근 한 가지 개가를 올렸다. 파리 7대학이 내년 봄 이전하는 새 건물에 ‘한국 정원’을 꾸미기 위한 공간을 확보한 것. 그는 “동양학부가 들어서는 건물의 4층에 50평가량의 공간을 얻어냈다”고 말했다. 학부장을 졸라 일본, 중국을 제치고 한국식 정원을 꾸미도록 허락을 받은 것.

한국학과를 비롯한 동양학부가 입주할 예정인 파리 7대학의 새 건물. 제분공장을 사들여 재건축 중이어서 ‘그랑 물랭(큰 방앗간)’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파리=금동근 기자

프로스트 교수는 즉각 파리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건축가 신용학 씨에게 의뢰해 설계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예산 확보라는 벽에 부닥쳤다. 학교 측에선 공간을 주겠지만 예산을 부담하기는 어렵다는 입장. 그는 한국의 관련 재단들과 기업에 편지를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어렵다는 대답이거나 아예 무반응이었다.

그는 “최대한 예산을 줄여 50만 유로(약 6억 원) 정도로 낮췄는데도 여전히 난망이다”며 한숨을 쉬었다. 만약 ‘한국 정원’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면 곧바로 중국 쪽으로 기회가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프로스트 교수는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 정부가 파리에서 한국 관련 행사를 대규모로 벌인 적이 있다”면서 “그런 일회성 행사에 쓰이는 예산의 일부만 들여도 두고두고 한국의 이미지를 알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는데 장기적인 안목이 아쉽다”고 호소했다.

“외모는 프랑스인이지만 나는 한국인”이라고 말하는 프로스트 교수가 ‘프랑스 안의 한국’을 지키기 위해 벌이는 노력은 어떤 한국인도 흉내 내기 어려울 정도다. 그 배경에는 한국과의 남다른 인연이 있다.

파리 7대학에서 영어와 일본어를 전공한 그는 도쿄대 유학 중이던 1976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한국을 처음 보고 반했다는 그는 1979년 한국을 다시 찾아 서울대 박사 과정에 등록했다.

이후 연세대 불문학과 교수를 지냈고, 그 시절 국가대표 테니스 선수이던 체육학과 4학년생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가 군복무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1983년 결혼한 뒤 파리 7대학 교수로 발령받아 프랑스로 돌아갔다.

1992∼1996년에는 주한 프랑스대사관 문화정책관으로 특채돼 다시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남편 이승근(48) 씨는 현재 프랑스 주식시장에 상장된 유일한 한국계 기업으로 평면TV와 모니터를 만드는 네오비아의 이사로 재직 중이다.


프랑스 파리 7대학에 들어설 예정인 ‘한국 정원’의 조감도. 벽면은 한국의 처마와 고궁의 담을 연상케 하는 양식으로 설계됐으며 백일홍, 단풍나무를 심을 계획이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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