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도청 녹취록’ 공개]홍석현-이학수씨 대화 내용

  • 입력 2005년 7월 23일 03시 05분


본보가 최근 입수한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과 이학수 삼성그룹 비서실장의 대화 녹취 문건들. 국가안전기획부 비밀도청팀(일명 ‘미림팀’)이 몰래 녹음한 테이프를 푼 것으로 ‘홍석현 이학수, 대선관련 주요사항 협의(1997년 10월 7일)’ ‘삼성그룹측 차기대권 유력후보에 대한 정치자금 지원방안 협의(1997년 4월 27일)’ 등 3건으로 돼 있다.
본보가 최근 입수한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과 이학수 삼성그룹 비서실장의 대화 녹취 문건들. 국가안전기획부 비밀도청팀(일명 ‘미림팀’)이 몰래 녹음한 테이프를 푼 것으로 ‘홍석현 이학수, 대선관련 주요사항 협의(1997년 10월 7일)’ ‘삼성그룹측 차기대권 유력후보에 대한 정치자금 지원방안 협의(1997년 4월 27일)’ 등 3건으로 돼 있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현 국가정보원)는 1997년 당시 홍석현(洪錫炫·주미 대사) 중앙일보 사장과 이학수(李鶴洙) 삼성그룹 비서실장이 세 차례 만나 나눈 대선자금 관련 대화를 불법 도청했다. 안기부가 도청해 만든 녹취록 중 MBC가 22일 밤 보도한 내용과 본보가 자체 입수한 녹취록 내용을 요약해 정리한다. 두 사람은 그해 4, 9, 10월 세 차례 만났다. 당시 계획대로 실행됐다면 삼성그룹이 신한국당 이회창(李會昌) 후보 측에 전달했거나 하려고 했던 돈의 규모는 100억 원에 육박한다고 MBC는 보도했다.》

▽이회창 씨에 대선자금 전달=1997년 10월 7일 홍 사장은 이학수 삼성그룹 비서실장과 만나 대선자금의 전달 대상과 액수, 시기 등에 관해 상세하게 협의한다.

홍 사장은 “이회창 대표를 만나 앞으로 돈 문제에 대해 누구를 창구로 했으면 좋겠느냐고 했더니 ○○○를 지정하기에 내가 좀 불편하니 이회성(李會晟·이회창 씨의 동생) 씨가 어떻겠느냐니까 ‘그럴까’라고 했다”고 말했다.

홍 사장은 “두 명이서 15개(15억 원으로 추정)를 운반하는 데는 문제가 없는데 30개(30억 원 추정)는 무겁더라고. 그 친구(삼성의 모 인사)와 나, 이회성 셋이서 백화점 주차장에서 만나 가지고…”라고 말했다.

MBC는 22일 밤 9시 뉴스에서 1997년 대선 당시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주미대사)이 이회창 후보 등에게 수십 억 원을 건넸다는 내용이 담긴 안기부 녹취록을 집중 보도했다. MBC TV 촬영

홍 사장은 “이회창 후보가 안을 짜 갖고 올 테니 기다려 보겠지만 15개(15억 원 추정) 정도가 아닐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또 “이회창 후보의 측근을 통해 30억 원을 줬는데 다 써버렸다. 그래서 또 다른 측근을 통해 18개(18억 원 추정)를 전달했다”고 말해 경선과정에서 48억 원의 전달 가능성을 시사했다.

▽대선자금 전달 창구=당시 삼성과 이회창 후보 간의 돈 전달 기본창구는 이회성 씨였다.

홍 사장은 9월 9일 이 실장과의 만남에서 “(자금을 전담하게 된) 이회성 씨가 내게 9월 8일의 신한국당 지구당위원장 연찬회 때 위원장들에게 나눠 줄 지원금(현금으로 지급하는 속칭 ‘오리발’)을 요청했다. 이에 이회성 씨를 집으로 오라고 해 2개(추정 액수가 문건에 나와있지 않음)를 차에 실어 보냈다”고 말했다.

이 후보의 고교 후배인 서상목(徐相穆) 전 한나라당 의원과 중앙일간지 편집국장 출신인 고흥길(高興吉·현 한나라당 의원) 씨도 때때로 돈 전달 역할을 했다는 내용도 문건에 나온다.

홍 사장은 10월 7일 만남에서 이 실장에게 “우리가 주는 것이 얼마인지 서(서상목 의원)는 알고 싶어 한다”며 “매번 이야기해 줘야 하느냐”고 상의했다.

이에 이 실장은 “이야기 안 하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서 전 의원은 MBC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기업들이 이회창 씨 최측근인 나한테 (돈을) 주고 싶어 했다”고 자신의 역할을 일부 인정했다.

홍 사장은 9일 9일 이 실장과의 만남에서는 “고흥길을 통해 모두 18개(18억 원 추정)나 줬는데 그걸 다 바친 모양인 것 같다. 이번에 좀 더 생각해 줘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 의원은 MBC와의 인터뷰에서 “말도 안 되는 얘기다”라고 답했다.

▽이회창 후보 광고 지원=삼성은 당시 이회창 후보의 이미지 홍보를 전격적으로 지원했다.

이 후보와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 후보가 박빙의 차로 접전을 벌여 이미지 광고대결이 치열했을 당시 홍 사장은 “서(서상목)가 이(회창) 대표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11억 원이 소요되니 삼성이 도와달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에 이 실장은 “그러지요”라며 승낙했다.

이에 대해 서 전 의원은 “1997년에 신문광고 및 TV토론을 처음으로 했고 그래서 많은 돈이 들었다”고 MBC와의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

이회창 후보의 이미지 광고를 담당한 광고기획사는 홍 사장의 친동생이 있는 보광그룹의 계열 기획사였다. 이 회사의 관계자도 MBC 취재진에게 이런 이미지 보완작업을 한 적이 있다고 시인했다.

▼“DJ 괄시못해 더블플레이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 관련=홍 사장은 당시 야당 후보였던 김대중 후보를 찾아갔는데, 이후 DJ로부터 봉투를 하나 받았다고 말했다.

홍 사장은 “스카치테이프로 봉한 것으로 보아 호의에 대한 감사 내용인 것 같고 특별한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이 비서실장에게 말했다. (이와 관련해 1999년 당시 국가정보원장 천용택 씨가 “홍 사장이 김 대통령을 만나 상당 거액의 정치자금을 줬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홍 사장은 모 언론사 편집부국장을 거명하며, 그 부국장이 DJ 쪽에 분위기를 전하고 있지만 괄시를 못해 더블플레이를 한다고 밝혔다.

홍 사장은 또 “한 유력 신문이 김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강도 높은 취재에 들어갔다”는 내밀한 정보를 이 실장에게 제공했다.

홍 사장은 “다른 언론사에서 DJ의 약점인 건강 문제를 강도 높게 취재하고 곧 기사화한다”면서 “이 언론사의 최고위층은 ‘다른 누가 되든지 김대중이가 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려 건강 문제를 치고 나가기로 했다”고 얘기했다.

홍 사장은 이어 “지금 DJ는 오른쪽 무릎의 괴사증으로 강서구 소재 모 병원의 주치의한테 몰래 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있다고 해서, 기자들이 야간 잠복근무를 하는 한편 CT촬영 결과도 어느 정도 확보했기 때문에 주간지나 월간지를 통해 터뜨릴 예정인데 상당한 파문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에 이 실장은 “DJ가 눈치를 채고 주치의를 바꿨다더라”고 대답했다.

홍 사장은 김 후보의 한 측근을 거명하며 “우리가 이회창 쪽에 한 것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갖고 있다고 한다기에…. 그렇게 이회창 쪽에서는 보안이 안 된다. 반면에 우리가 지난번 DJ한테 한 것은 일절 얘기가 안 나온다”고 말했다.

▼“이회창씨로 갈 수밖에 없다고 들어”▼

▽중앙일보 개입=홍 사장은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만나 “노조나 호남한테 아부해도 안 되니 보수 편에 서서 민생 쪽에 좀 관심을 보이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개인 의견을 얘기했다고 이 실장에게 말했다.

홍 사장은 “고흥길 후보특보가 사임하겠다고 해 이회창 대표를 직접 만나 고흥길 특보의 내부 지위 격상을 부탁해 승낙을 받아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 의원은 MBC와의 인터뷰에서 보직 사퇴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또 홍 사장은 대선 두 달 전 김영삼 대통령의 측근이 중앙일보 고위 간부를 찾아와 “이회창 씨가 힘들 것 같은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어 이 고위 간부가 “다른 방법이 없다. 이회창 씨로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더라고 전했다.

홍 사장은 “중앙일보 간부가 느끼기로는 이 측근의 얘기가 틀림없이 김 대통령의 생각인 것 같더라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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