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싸인 홍 대사 발탁 과정=홍 대사는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불법 도청 녹취록 사건이 처음 언론에 불거진 21일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나 “여기 올 때도 내 뜻대로 온 게 아니다. 앞으로도 큰 흐름에 맡기겠다”고 했다.
‘내 뜻’이 아니었다면 ‘누구의 뜻’이었을까.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은 1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홍 대사의 발탁은) 철저하게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정 장관은 “나는 심부름을 했을 뿐”이라고 덧붙여 자신이 메신저 역할을 했음을 시사했다.
홍 대사 본인은 3월 2일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비공식 간담회에서 지난해 11월 8일 ‘모 인사’의 제의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그쪽 말대로라면 ‘찾다가 찾다가 내가 거론돼서 생각했다’고 대통령이 그랬다더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아이디어’라는 정 장관의 말과 궤를 같이하는 설명이다.
홍 대사는 “당시 청와대에선 빨리 답을 달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지 않느냐”면서 고민 끝에 1개월 뒤 대사직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왜 그를 대사로 발탁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선 홍 대사 발탁을 둘러싸고 갖가지 설(說)이 나돈다.
먼저 노 대통령이 중앙일보와의 취임 1주년 대담을 하는 자리에서 당시 중앙일보 회장 자격으로 참석한 홍 대사와 대화를 나누며 호감을 갖게 됐다는 관측도 있다. 홍 대사가 유엔 사무총장 출마 등 정치적 포부를 관철하기 위해 ‘자천(自薦)’했고 이게 정부 측의 인사 수요와 맞아떨어졌다는 얘기도 있다.
삼성과 현 정부와의 ‘보이지 않는 끈’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노 대통령의 측근 실세 중에는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정책 공약 수립을 삼성경제연구소에 맡기자고 주장할 정도로 과거부터 삼성 측과 깊은 교류를 맺고 있는 인사가 있다는 것이 여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런 인연이 홍 대사를 발탁하게 된 주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
▽고심하는 홍 대사=홍 대사는 22일 오수동 홍보공사를 통해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방법으로 설명할 기회를 검토하겠다”는 입장만 밝혀 놓은 상태다.
오 공사는 홍 대사가 이번 주에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밝힐 것처럼 알려진 데 대해 “특파원들에게 시간을 달라는 뜻으로 한 말이 잘못 전달된 것 같다”면서 “거취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고 말했다.
홍 대사는 이른바 ‘X파일’이 공개된 이후 예정된 일정을 모두 소화했으며 이번 주에 잡혀 있는 일정도 빠짐없이 참석할 것이라고 대사관 관계자는 전했다.
따라서 홍 대사는 일단 청와대의 정확한 의중과 국내 여론을 종합적으로 파악한 뒤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대사관 관계자는 “홍 대사의 거취는 청와대가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달렸다”면서 “청와대 의사와 관계없이 홍 대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해 발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13개월 동안이나 중단됐던 6자회담이 26일 재개되는 만큼 홍 대사가 당장 사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워싱턴=권순택 특파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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