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오 씨는 병으로 바깥출입도 못하던 병자였지만 살아보겠다고 무진 애를 쓰던 사람이었다. 그런 아내가 며칠 전 식음을 전폐하다 끝내 숨졌다. 자살이나 마찬가지였다.
얼마 전 애인을 사귄 아들이 “엄마, 여자가 집에 올 때 딴 집에 좀 가 있어요”라고 한마디 한 게 오 씨에겐 충격이었다. 다행히 오 씨는 땅에 묻힐 수는 있었다. 비록 묘비도 봉분도 없었지만. 대신 남편 최 씨는 당의 방침을 어겼다.
지난해 당국은 나무 한 그루 없는 도시 주변 산에 묘지만 가득하다며 무조건 화장(火葬)을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평양에서는 2004년부터 실시됐다.
2002년에 하달된 방침은 봉분을 깎아 없애고 묘비는 최대한 낮추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3년 만에 다시 매장 불가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청진시에 하나 있던 화장터가 재가동되기 시작했다. 비용은 북한 돈 9만 원(약 30달러) 정도. 납골당은 없고 뼛가루는 단지에 담아 유족에게 돌려준다.
조금 지나자 청진 시내에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한꺼번에 3명씩 화장한대.” “어느 집에서는 단지에서 벌레가 기어 나온대.”
노인들은 한탄했다. “내가 죽을 때를 잘못 만났지. 아들아, 난 땅에 묻히고 싶다.”
방법이 없지는 않다. 아직 화장은 대도시에서만 시행된다.
차를 세내 농촌에 가서 묻으면 된다. 하지만 서울∼수원 정도의 거리도 10만 원은 넘게 줘야 한다. 근로자 평균 월급이 2000∼3000원이다.
산림보호원에게 뇌물을 주고 가까운 산에 묻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최 씨는 가진 돈이 없다. 최 씨가 장사해 버는 돈과 딸이 받는 월급 2000원(약 0.7달러), 그리고 배급을 더해 그날그날 겨우 먹고산다. 그들의 선택은 야반 암매장뿐이었다. 아내를 묻은 직후 최 씨는 탈북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묘지 보기 싫다” 김정일이 화장 지시
■ 전문가 한마디
손광주 데일리NK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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