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먹구구식 타당성 검토
제주컨벤션센터가 2005년 현찰로 지출한 영업비용은 43억 원이지만 벌어들인 돈은 21억여 원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최소한의 생존조건’도 맞추지 못한 것.
제주도는 당초 회의 유치만으론 제주컨벤션센터가 적자를 낼 것을 예상해 면세점, 카지노 등 부대사업으로 적자를 메운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당초 계획된 부속시설 가운데 현재 운영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제주컨벤션센터의 재무구조를 살펴본 외국계 컨설팅 회사의 한 임원은 “적자를 부대사업으로 메우려면 1년에 1000억∼2000억 원의 매출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연히 부대사업에 대해 철저히 검증했어야 하는데 컨벤션센터부터 개장했다면 이상한 의사 결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제주컨벤션센터 측도 할 말은 있다. 이 센터 관계자는 “사업 타당성을 외부 전문기관에 맡겨 검토했다”며 “컨벤션센터 사업은 민간기업과 달리 공익적 목적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지만 외부 용역은 추후 사업 실패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위한 ‘면피용’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심지어 타당성 검토도 하지 않고 ‘맨주먹’으로 사업부터 벌이는 무모한 지자체도 있다.
광주시는 타당성 분석을 하지 않고 컨벤션센터 건설을 추진하다 감사원의 제지를 받았다. 대구시는 타당성 검토 기관의 반대 의견을 무시하고 3007억 원 규모의 ‘패션 어패럴 밸리’ 건설을 추진하다 감사원에서 ‘전면 재검토’ 요구를 받기도 했다.
○ 적자인데도 “효과 크다” 뻥튀기
지자체의 경영 마인드 부족도 심각하다. 건물 하나를 짓는 데 수백억 원이 들어가는 문화예술회관의 경우 대부분이 적자를 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변변한 문화 행사를 유치하지 못하고 있다.
경기 A시는 건설팀이 문화예술회관을 지어 운영팀에 인계했다. 이 건물은 구조 자체가 공연에 부적합했다. 배우들이 등장하기 전 대기하기 위한 보조무대도 없고, 분장실은 무대와 멀리 떨어진 다른 층에 있다. 당연히 제대로 운영될 리가 없다.
전국문예회관연합 관계자에 따르면 문화예술회관을 짓기 전 운영위원회를 열어 시설의 적합성 등을 검토하는 지자체는 전체의 5% 미만이다.
적자가 눈 덩이처럼 커지는 사업에 대해서도 지자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유발 효과가 대단하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3월 문화관광부는 “지난해 열린 지역 문화관광축제의 경제 파급 효과를 각 시도가 작성한 통계로 합산한 결과 45개 축제의 경제 파급 효과가 총 1조171억7500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힌 적이 있다. 또 지역 축제의 결과 발표를 살펴보면 수십억∼수백억 원대의 경제 유발 효과를 거두지 않은 축제가 없다.
삼성경제연구소 민승규 박사는 “지자체들이 경제 유발 효과 측정을 위해 즐겨 사용하는 산업연관 분석은 결과를 자의적으로 부풀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 재정의 효율성 높여야
비록 재정은 열악하지만 독특한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돈벌이’에 성공하는 지자체도 있다.
전남 완도군은 드라마 ‘해신’ 세트장을 보존 처리해 지난해 관광객 500만 명을 유치했다. 충북 충주시는 온천수 사업을 직영화해 쇠퇴기에 있던 수안보 온천을 살려내 흑자를 내고 있다.
한국자치평가연구원 김병창 본부장은 “지자체도 기업 마인드를 갖추고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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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 ‘가계부 수준’▼
“이거 좀 곤란한데요.”
기업과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운영을 비교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머리부터 긁적였다. 열심히 문제점을 지적하던 중에도 “기업과의 비교를 부탁드린다”란 말만 나오면 목소리가 작아졌다.
기업과 지자체의 회계 기준 자체부터가 다르기 때문이다. 기업이 복식부기(재산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거래를 차변과 대변으로 나눠 기입)를 사용하는 반면 지자체는 단식부기(단순히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만을 기입)를 사용한다.
장부 기입 기준도 기업은 발생주의(현금의 실질 유출입과는 별도로 거래가 발생한 시점에 관련되는 수익과 비용을 인식)이지만 지자체는 현금주의(현금의 유출입이 있을 때만 수익과 비용을 인식)다.
가장 큰 문제는 단식부기가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가계부 수준’의 정보만을 제공한다는 점에 있다. 이렇게 하면 정확한 성과 측정이 힘들고 자산, 부채에 대한 정보를 제때에 제공하기도 어렵다.
경기도는 지난해 8월 1일부터 9월 11일까지 파주시 평화누리 행사장에서 ‘세계평화축전’을 열었다. 공연장, 조형물, 카페, 연못, 산책로 등 기반시설을 짓는 데 들어간 돈은 모두 116억 원. 거액의 시설 투자비는 ‘행사 시설비 및 부대비’와 같은 지출로만 처리됐다.
경기도의 재산이 된 건물과 시설의 가치에 대해서는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다. 복식부기라면 자산(건물 및 시설)의 증가와 건축비용 지출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모두 고려되었을 것이다.
원가 개념이 없다는 것도 문제점이다. 세계평화축전 같은 관 주도 행사에는 용역을 맡은 이벤트회사 이외에 공무원들도 다수 일손을 보탠다. 하지만 행사를 결산할 때 공무원의 시간당 임금을 포함해 얼마만큼의 원가가 들어가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성과 평가가 이뤄지지 않는다. 주민 세금으로 지급한 공무원 급여는 전혀 계산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은 공무원의 업무시간 사용에 대한 비용까지 철저하게 챙긴다. 뉴질랜드에서 공무원을 인터뷰하려면 업무에 지장을 준 시간만큼 금전적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뉴질랜드나 캐나다처럼 복식부기를 사용하게 되면 손익계산서와 대차대조표, 현금흐름표 등을 이용해 손익과 유동성에 대한 정보가 손쉽게 들어온다.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내년부터 전국 지자체에 복식부기 방식을 도입할 방침이다. 하지만 현장의 의견은 본격적인 도입은 몇 년이 더 지나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별취재팀>
반병희 차장 bbhe424@donga.com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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