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직후 5일 동안 실국 책임자를 불러 추진 업무를 개괄적으로 보고 받은데 이어 미진한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파악에 들어갔다.
이와 별도로 실국 책임자에게는 ‘숙제’도 내주었다.
그는 “현안이 너무 산적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막막하다”며 “참신한 아이디어를 최소한 1개 씩 구상해 상세 보고를 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항구도시의 중심지에서 낙후지역으로 전락한 중구의 도심 재개발에 행정력을 모으겠다고 강조한다.
“중구는 1985년을 기점으로 인구가 꾸준히 줄어들면서 ‘떠나면 돌아오지 않는 지역’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어요. 항만과 공항을 보유했음에도 물류와 연관된 일자리가 별로 창출되지 않고 있지요.”
이런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 항만공항물류 관련 전담 부서부터 신설하기로 했다.
근대 개항의 관문이었던 지역적 특성을 살려 문화관광정책도 의욕적으로 펼치려 한다.
그는 “국내 유일의 차이나타운에는 주말에만 관광객이 몰리고 있고 골목길의 교통 혼잡이 심각한 실정”이라며 “차이나타운을 차 없는 거리로 만들고 타운 내에 중국어마을을 2008년까지 조성하려한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월미도 앞바다와 차이나타운∼자유공원∼경인전철 동인천역을 잇는 관광벨트 모노레일을 설치하려는 구상도 밝혔다. 그는 “인천의 첫 여성 자치단체장으로서 섬세함과 포용력을 살려 ‘살림 행정’을 꾸려보겠다”고 덧붙였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주부서 정치인으로… 사회활동 명성▼
박 당선자는 지난해 모 언론사 여론조사를 통해 인천에서 영향력 높은 여성인사 1위로 꼽혔다.
그는 인하대 교수였던 남편을 뒷바라지 하는 가정주부로 지내다 40대 늦깎이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정치인으로서 비교적 순탄한 길을 걸어온 편이다.
민정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인천시지부 여성위원장을 맡아오다 2, 3, 4대 시의원으로 내리 당선됐다.
회원 1만 여명을 보유한 문화단체인 새얼문화재단 후원회 부회장과 인천여고 총동창회장을 맡는 등 사회활동에도 열성이다.
그는 중구에서 5대째 살고 있는 토박이.
중구 전동에서 자라나 길 건너 동네인 답동으로 시집을 갔다.
그는 이처럼 인연이 깊기 때문에 중구의 옛 모습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인천 1호 백화점이었던 율목동의 항도백화점, 바다로 나가는 갯골이 흐르던 신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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