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은 미사일 쏘는데 한미동맹 왜 흔드나”

  • 입력 2006년 8월 3일 03시 01분


《역대 국방부 장관 13명은 2일 윤광웅 국방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한미동맹 약화와 안보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 전직 국방부 장관은 “전시작전권 환수는 국익은 물론 국가 흥망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역사에 남을 결단을 하라”며 윤 장관을 몰아세우는 등 작심한 듯 강경한 발언들을 쏟아 냈다. 이날 간담회에는 현 정부의 초대 국방부 장관을 지낸 조영길(38대) 전 장관도 참석했다. 역대 장관들은 간담회에서 “북한의 위협 등을 감안할 때 안보는 지나칠 정도로 강화해야 한다. (안보는) 한번 잘못되면 큰일 나기 때문에 이런 관점에서 걱정되고 나라가 잘되길 기원하는 심정으로 얘기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 창설 때 각각 장관과 실무 장교를 지낸 노재현, 김동진 전 장관과 1992년 한국군의 평시작전권 환수 때 재임한 최세창 전 장관은 “힘들게 창설된 한미연합사는 한미동맹의 근간인 만큼 해체하는 상황이 벌어져선 안 되며 오히려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 참석자는 “간담회에 가기 전에 몇몇 장관과 윤 장관에게 전달할 의견을 조율했다”며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는 국가보안법 존폐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인 만큼 할 말을 다 했다”고 말했다.

간담회 직후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1990년대 평시작전권 환수가 추진될 때도 원로 장성들은 주한미군이 당장 철수하고 전쟁이 날 것처럼 우려해 애를 먹었다”며 “군 원로들은 한국군이 소화기로 전투하던 옛 전투 경험에 의존해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김성은(15대) 정래혁(18대) 서종철(20대) 노재현(21대) 윤성민(23대) 이기백(24대) 오자복(26대) 이상훈(27대) 최세창(29대) 이양호(32대) 김동진(33대) 이준(37대) 전 장관 등이 참석했다. 다음은 발언 요지.

▽노재현 전 장관=전시작전권은 한미연합사의 지휘 체계에 따라 한미 양국이 공동 행사해 왔기 때문에 ‘환수’라는 용어는 잘못된 것이다. 한국이 전시작전권을 ‘단독 행사’한다는 것이 맞다. ‘환수’라고 하면 반미를 하는 사람들에게 좋게 들릴 우려가 있다. 전시작전권의 내용과 의미, 또 환수할 경우 빚어질 상황에 대해 대통령께서 잘 알고 계신지 궁금하다.

▽백선엽 예비역 대장=지난해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과 면담했을 때 한미동맹은 어떤 경우에도 해이해지거나 깨져서는 안 되고, 북괴의 대남 전략이 변하지 않는 한 주한미군이 더는 철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일각의 얘기처럼 주한미군사령관이 대장에서 중장으로 격하되면 한국의 방위가 위험하니 꼭 지켜 줄 것을 요구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자신의 임기 중에 한미동맹이 약화되거나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지금 같은 때일수록 우리는 역사 공부를 잘해야 한다.

▽김성은 전 장관=북한은 우리와 세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초 미사일 7발을 발사했고, 유엔에서는 대북제재 결의문까지 채택했다.

이번 사태에서 보듯이 우리가 전시작전권을 단독 행사하기엔 정보 전력이 부족하다. 또 전시작전권을 단독 행사하더라도 미국이 변함없이 정보 지원을 해 줄 것이라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현 시기에서 전시작전권 단독 행사를 추진하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 특히 북한 미사일 사태와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라는 큰 변수가 생긴 만큼 전시작전권 단독 행사를 위한 로드맵 논의는 중단돼야 한다.

▽이상훈 전 장관=윤 장관이 장관 직위를 걸고 대통령께 현 안보 상황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잘 말씀드려 용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10월로 예정된 제39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전시작전권 환수 로드맵을 합의하지 말고 연기해 줄 것을 요청한다.

전시작전권을 환수하면 가장 먼저 한미연합사가 해체될 것이다. 현역 시절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냈다. 현재의 한미연합사는 효율성과 신속성, 통합성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모범적인 사령부이다. 왜 이것을 없애려고 하나.

일본은 2008년 개헌을 통해 요코스카에 한미연합사를 본뜬 ‘미일 연합사령부’를 설치하려고 하는데 왜 우리는 거꾸로 가나.

▽이기백 전 장관=3년 전 국방부가 전시작전권의 ‘환수’ 표현은 마치 미국에 뺏긴 것을 찾아오는 듯한 잘못된 표현이라고 했으면서 갑자기 환수를 거론하고,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뭔가. 1980년대 합참의장 재직 때 한미연합사령관의 이·취임식을 주관한 적이 있는데 이는 바로 한국도 전시작전권을 미국과 똑같이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사시 한반도에 전개될 막대한 규모의 미 증원 전력은 첨단 지휘시스템을 갖춘 한미연합사에서 지휘할 수 있다. 부족한 조기경보능력과 대북감시체제를 가진 우리의 독자적인 지휘 체계로는 감당할 수 없다.

이 때문에 2, 3년 전 국방부도 전시작전권 환수가 힘들다는 보고서를 냈고 당시 김희상 전 대통령국방보좌관이 대통령 앞에서 책상을 치며 환수 추진론자들과 싸운 것이다.

▽조영길 전 장관=역대 장관들이 과거의 재임 경험에 비춰 국가 안보를 걱정하며 생각한 의견들을 윤 장관이 잘 참고해서 앞으로 한미관계나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에 잘 대처해 달라.

▽그 밖의 발언들=다른 전직 장관들도 안보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으나 본보에 발언 내용을 전하면서 익명을 요구했다. 한 전 장관은 “한국이 2012년까지 전시작전권을 환수하겠다고 하자 미국이 그 전에라도 전시작전권을 내놓겠다고 하는데, 윤 장관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느냐”고 물었다고 전했다.

다른 전직 장관은 “적래적거(適來適去)라는 말이 있다. 윤 장관도 이 말을 기억했다가 앞으로 임기를 마치고 명예롭게 떠날 수 있도록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에 대해) 직위를 걸고 잘해야 한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한 4개 계획 중 모든 것이 관철되고 국보법 존폐 문제만 남았다. 하지만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는 국보법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국가 흥망에 직결된 중요한 사안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직 장관은 전시작전권 환수가 주한미군 철수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그는 “현재 전시작전권은 한국이나 미국 대통령 어느 일방이 아니라 반반씩 행사하는 것이고 이런 의미에서 한미연합사의 지휘 체계는 참으로 바람직한 것이다. 전시작전권 환수로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면 결국 주한미군의 철수를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이 문제는 우리 안보의 중대한 전환점인 만큼 윤 장관이 소신을 갖고 대통령께 말씀드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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