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포용정책 주장 어려워” 통일장관은 “수정 없다”

곤혹 10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이종석 통일부 장관(왼쪽)이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해 의원들에게서 질의를 받고 있다. 북핵 태스크포스(TF)팀 반장을 맡고 있는 유명환 외교통상부 제1차관은 피곤한 듯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 김경제 기자

《북한 핵실험의 여파가 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전면 개편을 촉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외교안보 정책의 기조였던 대북 포용정책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의사를 천명해 새로운 정책을 수립해야 할 상황이 되면서 정부 내에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나오고 있다. 특히 현 외교안보 라인의 핵심 인사들은 북핵 문제를 대화와 지원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가진 정권 핵심부 내 386세대 및 그 주변 인사들을 견제하지 않고 방치하거나 부추겼다는 지적이 많다. 13일(현지 시간) 유엔 총회에서 사무총장으로 선출될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사퇴로 외교안보 라인의 개편이 예정돼 있었지만 이번 핵실험 때문에 개편 폭의 확대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 北 안하무인 키운 외교안보라인 난맥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장관은 10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북 포용정책이 폐기되거나 전면 수정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핵실험 때문에 우리가 추진해 왔던 정책의 일정한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는 노 대통령이 9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포용정책에 대한 견해와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노 대통령은 “포용정책의 포용성이 더 있다고 하기도 힘든 것 아니냐. 궁극적으로 포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황이 그렇게 바뀌고 있는 것은 객관적 상황”이라고 밝혔다. 포기는 아니지만 사실상 폐기나 전면 수정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장관의 10일 국회 발언을 놓고 정부 내에선 이 장관이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부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을 맡아 포용정책의 기조를 세워 왔기 때문에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이 장관은 또 이날 국회에서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북한이 오로지 미국만 바라보는 상태에서 잘 안 됐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에 대해서도 이 장관이 북한과 미국에 책임을 돌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북한의 대미 일변도 정책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한미 공조 강화를 정책의 근간으로 삼아 북한을 묶어 두는 정책을 펴야 했는데 오히려 북한 편을 들면서 한미관계를 약화시켜 북한에 틈을 줬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송민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송 실장은 북한이 3일 핵실험 방침을 밝히기 직전까지 6자회담 재개를 위한 ‘포괄적 접근방안’을 6자회담 참가국들과 조율하는 일에 매진했다.

송 실장은 지난해 11월 이후 1년 가까이 공전된 6자회담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노 대통령을 강하게 설득해 6자회담 재개에 희망을 갖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핵실험으로 일거에 무너뜨려 버렸다.

이에 대해 청와대와 외교부 안팎에선 송 실장이 북한의 전략과 의도를 제대로 읽지 못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을 많이 한다.

류길재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은 지난해 2월 핵 보유 선언을 했을 때 이미 핵실험 능력을 완비해 놓고 실험을 하기 위한 로드맵을 만들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6자회담 한국 수석대표로서 북한의 핵 폐기 수용을 전제로 한 9·19공동성명을 성사시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것도 송 실장에겐 짐이 됐다는 분석이 많다. 또 최근 반 장관의 후임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면서 ‘6자회담 재개’라는 성과를 올려야 한다는 부담감을 벗지 못했다는 관측도 있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주요 안보현안에 대해 오락가락한 행보를 보여 군 최고책임자로서 역량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여러 차례 받았다.

윤 장관은 8월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설명하면서 “(한미연합사 체제는) 군사주권 침해에 가깝다”고 발언해 물의를 빚었다.

윤 장관은 당시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침해가 아니라 선의로 전시작전권을 넘겨준 데 따른 제한이다. 주권과 직접적 관계가 있다고 표현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정정했다.

이에 앞서 7월 5일 북한이 대포동 2호를 비롯한 7발의 미사일을 발사한 뒤 윤 장관은 “북한이 1993년에도 나흘간 7발의 미사일을 발사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윤 장관의 발언에 대해 ‘책임 회피’라는 비판이 일자 국방부는 ‘이틀간 3발’이라고 정정하는 소동을 벌였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반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것은 큰 업적이지만 사무총장 선거 활동을 하면서 북핵 문제를 소홀하게 다룬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정부 및 국회에서 제기되고 있다.

반 장관이 청와대 중심의 ‘자주외교’ 정책 때문에 한미관계에 마찰이 빚어지는 상황을 바로잡는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한 중견 외교관은 “노 대통령이 외교에 대해 워낙 확고한 ‘관(觀)’을 가지고 있어 반 장관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