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릴수도… 달랠수도… 미국의 딜레마

  • 입력 2006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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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는 있지만…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11일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뒤에 한반도의 밤을 위성 촬영한 지도가 걸려 있다. 환하게 밝은 남한과 전기 부족으로 어둠뿐인 북한을 보여 주는 이 사진은 럼즈펠드 장관의 ‘단골 브리핑 자료’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웃고는 있지만…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11일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뒤에 한반도의 밤을 위성 촬영한 지도가 걸려 있다. 환하게 밝은 남한과 전기 부족으로 어둠뿐인 북한을 보여 주는 이 사진은 럼즈펠드 장관의 ‘단골 브리핑 자료’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북한의 핵실험을 ‘응징’하기 위한 미국의 움직임에 연일 속도가 붙고 강경 발언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 같은 자신감의 이면에서 ‘북한의 핵무장’이라는 엄연한 현실과 불확실한 해결 전망 사이에 놓인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고민과 한숨도 깊어가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발표 직후 전 세계적인 규탄의 공감대 속에서 부시 행정부가 그토록 바랐던 ‘공동전선’이 자연스레 형성되고 있지만, 동시에 한편에선 대북 직접 협상에 나서라는 비판도 높아지고 있다.

▽‘대북 제재 성공 확신 어렵다’=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11일(현지 시간) “강력한 군사 억지력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도 실효성 있는 외교가 가능하다고 보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은 ‘아마 그럴 것’이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시간이 말해 줄 것”이라고 대답했다. 국무부나 백악관의 자신감과는 다른 태도다.

현재 미국 내에서 제기되는 부시 비판론 가운데는 “대북 압박정책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생존을 위한 핵도박’으로 내몰았다”는 원인제공론도 포함돼 있다.

물론 그 같은 비판은 “북한이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은밀히 핵 프로그램을 추진해 온 점을 도외시한, 앞뒤가 안 맞는 주장”이라는 지적에 밀려 거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핵무장을 막지 못한 책임은 막중하다”는 비판에 대해선 부시 행정부도 ‘말발’이 딸리는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공화당의 한 인사는 “북한의 야욕이 근본원인이고 중국 한국 등 핵심 관련국들의 엇박자에도 큰 책임이 있다”며 “하지만 북한이 당연히 F학점을 받고 한국이 나쁜 학점을 받는다 해서 C학점 이상을 받기 어려운 부시 행정부에 위안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네오콘식 세계관이 초래한 제약’=9·11사태 이후 외교정책 주도권을 장악한 네오콘(신보수주의자) 그룹의 기본적인 대북 인식은 “빌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모르핀’ 주사에 불과했다”는 말로 요약된다. 통증만 없앴을 뿐 병원(病源) 제거는 아예 외교 목표에 들어 있지도 않았다는 비판인 것이다. 1994년 제네바합의는 ‘일단 문제만 덮어 주면 이런저런 선물을 안겨 주겠다’며 봉합한 것으로 ‘철학 부재’의 산물이란 것이 이들의 인식이다.

북한이 2002년 말부터 핵 프로그램을 노골화하자 딕 체니 부통령실은 “나쁜 행동은 보상하지 않는다는 철학과 원칙대로 북한을 다루라”는 협상원칙을 정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양자 협상 불가, 다자틀 내 해결’ 원칙은 철길처럼 한 번 정해지면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궤도가 됐다.

냉전 붕괴 후 ‘유일 초강대국’ 미국을 향한 일방적 기대와 ‘일방주의 비판’이란 모순관계도 부시 행정부의 운신을 제약했다.

이 같은 미국의 처지를 요제프 요페 독일 디 차이트 편집장은 “1등 국가(primacy)이긴 하지만 세상을 주무를 정도의 압도적 1등(supremacy)은 아닌 처지가 미국을 괴롭힌다”고 표현했다.

▽‘목소리는 높아도 옹색한 처지’=부시 대통령은 11일 회견에서 과거 클린턴 행정부 때의 양자회담이 실패했음을 지적하며, 다자적 접근이 최선의 전략임을 확신한다고 재확인했다.

맨스필드 재단의 고든 플레이크 사무국장은 “부시 행정부는 대화를 통해 핵무장을 폐기시킨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어 직접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며 “미국으로선 선택의 폭이 넓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미국인 25% “한미관계 나빠졌다”

미국 국민 가운데 42%는 주한미군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북한 남침 시 미군의 단독 투입에 반대하는 의견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연구기관인 시카고 국제문제협의회(Chicago Council on Global Affairs)는 11일 미국 한국 중국 호주 인도 등 5개국의 시민(각 1000∼3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한미관계에 대해 미국인들은 15%가 ‘좋아졌다’고 응답한 반면 ‘변화 없다’ 53%, ‘나빠졌다’는 응답이 25%였다.

현 주한미군 3만 명이 적정한가를 묻는 질문에 미국인은 ‘너무 많다’ 42%, ‘적정’ 42%, ‘너무 적다’ 10% 등으로 응답했다. 한국인들 가운데선 ‘너무 적다’ 8%, ‘적정’ 54%, ‘너무 많다’ 36% 등이었다.

북한이 남침할 경우 미군의 투입에 대해 미국인의 45%가 찬성하고 49%는 반대했다.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할 경우엔 미군 투입에 53%가 찬성했고 42%가 반대했다. 중국의 대만 침공 시 미군 투입엔 반대 61%, 찬성 32%였다.

그러나 북한 남침 시 유엔 차원의 다국적군 투입에 미군이 기여하는 데엔 65%가 찬성했고, 주한미군의 장기 주둔에 대해서도 62%가 찬성하고 20%가 반대해 여전히 많은 미국인이 대한국 안보약속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美 민주-공화 중간선거 앞두고 책임 공방▼

“부시 때문” 北과 대화 않더니… 6년간 뭐했나

“클린턴 탓” 채찍없는 당근… 北 나쁜버릇 조장

북한 핵실험은 미국 빌 클린턴 전 행정부의 실패인가, 조지 W 부시 현 행정부의 실패인가.

미 의회 중간선거가 다음 달 7일로 다가오면서 공화 민주 양당의 유력 차기 대권 주자들이 마치 정치생명을 건 듯한 설전을 벌이고 있다.

10일(현지 시간) 포문을 연 사람은 공화당 존 매케인 상원의원. 매케인 의원은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겨냥해 “북한 핵실험은 1994년 클린턴 대통령이 체결한 제네바합의의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핵실험 직후부터 강력 대두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 책임론을 정면에서 맞받아친 것.

힐러리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측은 그동안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한을 다룰 큰 틀을 만들어 후임자에게 물려줬는데 부시 행정부가 기회를 망쳐버렸다”고 비난하며 북한과 직접 협상을 벌이라고 압박해 왔다.

매케인 의원은 “북한이 제네바합의의 대가로 수십억 달러어치의 에너지와 식량 지원을 받은 뒤 뭘 했는가 묻고 싶다”며 “북한이 해 온 것은 뻔뻔하게도 비밀 핵개발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의 나쁜 행실을 조장한 것은 당근만 있고 채찍이 없는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었다”며 “클린턴 전 대통령이 한 일이란 하나의 당근이 효과가 없으면 다른 당근을 준 것일 뿐”이라고 비꼬았다.

힐러리 의원 측은 즉각 성명을 통해 매케인 의원이 초당적 대처가 필요한 북한 핵실험을 위험하게 정치 쟁점화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최근 6년간 북핵 문제를 맡은 것은 부시 대통령이었고, 우리는 이틀 전 그 황당한 결과를 목격했다”고 받아쳤다.

2004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존 케리 상원의원도 강력히 반발했다. 2008년 대선 후보로도 거론되는 케리 의원은 “클린턴 행정부 역시 완벽한 협정을 체결하지 못했다는 것은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최소한 대화는 했다. 적어도 그들은 핵사찰관을 보내 핵 연료봉이 어디 있는지는 알았다. 지금은 연료봉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매케인 의원은 민주당의 양자 협상 주장을 한마디로 묵살했다. 그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악의 일이 북한의 양자회담 요구에 응하는 것”이라며 “북한의 나쁜 행실에 보상한다면 우리가 더 나쁜 행실 외에 뭘 얻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현재로선 북한의 핵개발 저지 실패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이 다음 달 중간선거에서 어느 당에 유리하게 작용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당장은 부시 행정부의 정책 실패가 부각되고 있지만, 안보위협이 유동층을 보수화시키는 경향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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