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한반도 북부에서 터진 핵실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진짜 핵실험이냐, 성공했느냐는 문제는 검증이 필요하지만 그 상징성은 동북아에선 ‘작은 빅 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일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를 인터뷰하면서 ‘동북아에선 이제 10·9핵실험 이전과 그 이후가 존재하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들려준 10·9핵실험 이후의 미래상은 감당하기 힘들 만큼 암울했다.
그는 이라크전의 수렁에 빠진 미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제재에 들어갈 여력이 없고 유엔을 통한 봉쇄 등 국제 제재 조치가 역사적으로 성공한 경우는 드물다는 점을 주목했다. 이번 사태가 헤게모니 국가로서 미국의 무능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또 한국 일본 대만 등 동북아 국가의 연쇄 핵무장을 불러와 2015년이면 핵보유국이 최대 25개국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의 전망이 들어맞을지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핵실험의 후폭풍이 남북문제 차원을 넘어선다는 점이다. 미국이 핵 보유와 상관없는 이라크에 전력을 쏟느라 진짜 핵보유국의 등장을 막지 못한다면 유일 초강대국으로서의 위상 추락은 불가피하다. ‘정상국가’를 강조해 온 일본으로선 평화헌법 개정 명분과 핵무장으로 갈 출구를 확보하게 된다.
세계체제론에 따르면 북한은 중심국-반(半)주변국-주변국으로 구성된 세계체제에서 반주변국에 불과한 소련과 중국의 영향 아래 있다가 공산권 붕괴 이후 비로소 그 중심국인 미국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놓인 최(最)주변국이다. 북한의 핵카드는 그 세계체제의 정식 회원으로 인정받으려는 발버둥이다. 이와 관련해 월러스틴 교수는 북한을 세계체제에서 배제한 결과가 반대로 미국 중심의 세계체제를 와해시킬 수 있는 구멍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약소민족인 세르비아 청년들의 총구에서 시작됐음을 떠올린다면 실제 북한의 의도나 능력과 상관없이 북한 핵실험도 세계적 재앙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10·9핵실험 사태를 남북문제 차원에서가 아니라 세계사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이유다.
권재현 문화부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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