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 할 것이다. 북한이 9일 핵실험을 강행한 기본 의도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흉내를 내려는 데 있었던 것 같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1998년 핵실험을 실시한 뒤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를 받았다. 미국은 9·11테러를 당한 후 두 나라를 대테러전의 전진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제재를 풀어 줬다.
핵보유국 인정-체제안정에 주력
두 나라가 핵실험 때문에 당장에는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았지만 나중엔 핵 보유를 인정받은 사실을 북한이 알고 모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앞으로 영변 5MW 원자로에서 추출한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핵물질의 양을 늘리고 추가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핵물질을 외부에 유출하지 않겠다는 또 다른 주장을 견지하고 있다.
북한은 9일 핵실험 발표 때 핵물질을 유출하지 않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상당히 의미심장한 내용인데 주로 미국을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외교적 해결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하면서도 북한의 핵 기술 및 핵무기 이전을 막는 데 주력하겠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북한이 핵물질을 제3자에 이전하지 않는 한 북한의 핵 보유를 묵인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를 남겼다. 미국의 속내를 간파한 북한이 핵물질 이전이라는 레드라인(한계선)만 넘지 않는 상황에서 핵보유국으로 남겠다는 의도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북한의 의도가 이 부문에서 일치한다면 우리로서는 북한의 핵 보유를 막을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밖에 없다. 북한은 미국과의 양자협상 개최에 주력하고 만약 협상이 열릴 경우 대등한 위치에서 핵군축 협상으로 유도하려 할 것이다. 핵군축 협상은 그동안 6자회담에서 추진해 온 북한의 핵물질 폐기보다는 차원이 높은 협상으로 북한의 협상입지를 훨씬 높여 주는 결과가 된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북한 핵물질의 이전을 차단하는 데만 관심을 가진 것처럼 비치는 모습은 매우 위험하다.
둘째, 김정일은 핵문제와 관련해 북한 사회 내부 안정에 주력할 것이다. 북한은 7월 수해로 인해 작황이 매우 좋지 않은 데다 이번 핵실험 여파로 국제사회의 식량 지원이 거의 중단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내년 봄쯤이면 1996년경처럼 아사자가 대량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북한 주민은 1990년대 후반처럼 제2의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핵실험 때문에 굶어죽는다’는 원성이 주민들에게서 터져 나올 것이 뻔하다. 이 점을 의식한 북한 매체는 1998년 대포동미사일 발사 때와는 달리 최근 핵실험 뒤 후속보도를 하지 않고 조용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제2의 ‘고난의 행군’으로 인해 생존의 한계상황에 도달한 북한 주민은 김정일 정권에 대한 불만을 터뜨릴 것이고 이것은 체제 변화를 일으키는 불씨로 작용할 소지가 많다. 핵무기를 가진 소련의 붕괴에서 보듯이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제가 이완되는 상황을 피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북한 내에서 체제 변화의 전조가 나타날 경우에 대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김정일은 이미 금이 간 북한과 중국의 관계 회복에 주력할 것이다. 혈맹관계라던 북-중 간에 핵실험으로 커다란 간격이 생기고 말았다. 미국이라는 적보다 중국이라는 친구의 변심이 두렵다고 불만을 품어 온 김정일 정권의 핵실험에 대해 중국은 한마디로 ‘적절하게 징계해야 한다’는 분노 섞인 태도를 보였다. 왕광야(王光亞) 유엔 주재 중국대사는 10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분명히 ‘징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김정일 정권 연명 도울 것인가
중국은 앞으로 대북 석유 및 식량 지원에 있어 전면적 수준은 아닐지라도 상당한 수준의 경제 제재를 취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북한 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은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 봉쇄 및 북한 주민의 불만과 겹쳐 북한 체제 변화에 대한 촉매 작용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사태는 누구도 단언하기 어렵지만 핵실험이 우리로 하여금 통일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은 틀림없다.
송영대 숙명여대 겸임교수 전 통일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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