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요즘 ‘제대 말년’이란 말을 자주 한다. 7월 3일 전당대회를 끝으로 대표직에서 물러나기 때문이다. 18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이미 현역 의원이 아니다.》
그는 열흘쯤 후면 대학을 졸업한 1971년 이후 37년 만에 처음으로 ‘무직’이 된다. “새장 속에만 있던 새가 하늘을 날 수 있는 자유를 얻은 기분”이란 게 그의 ‘무직의 변’이다.
그는 앞으로 뭘 할지에 대해서는 입을 꼭 다물고 있다. 푹 쉬겠다고만 한다.
“머리에 잔뜩 낀 노폐물을 청소해야겠어요. 그러려면 푹 쉬는 게 제일이지. 이명박 대통령도 좀 쉬어야 해요. 실무자와 달리 창조적 사고가 필요한 리더는 충분히 쉴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그가 마냥 쉴 것으로 보는 사람은 정치권에 아무도 없다. 차기 대권을 향해 뭔가를 준비할 것이란 게 정설이다.
“20년간 국회의원을 했는데, 여기서 4년 더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발상의 전환을 해서 인생을 리노베이션해 볼까 한다”는 그의 말에서도 ‘2보 전진을 위한 전략적 휴식’이란 느낌이 든다.
우선 그와 가까운 30여 명의 의원과 각 분야 교수 70여 명으로 구성된 연구재단이 조만간 출범할 예정이다. 이를 두고 ‘강재섭 대권 프로젝트’라는 해석도 나온다. 그가 이 조직을 통해 여의도 정치와 끈을 유지할 계획인 것은 분명하다. 최근 자택과 가까운 경기 성남시 분당에 개인 사무실을 냈다.
당 안팎에서는 강 대표가 어느 시점이 되면 재·보궐선거를 통해 원내 입성을 하든지, 국무총리 등을 맡아 새로운 도약을 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다. 최근에도 총리 하마평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그의 대표직 2년에 대한 평가는 후한 편이다. 치열했던 대선후보 경선을 무난히 치러내고 대선과 총선을 잇달아 승리로 이끌었다. 경선-대선-총선을 모두 치른 당 대표는 이제껏 없었다.
말 많고 탈 많은 여의도에서 20년을 견디면서도 딱히 적이 없을 만큼 대인관계가 원만하다. 이해관계를 따져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지 않는 편이다.
승부사 기질이 부족하지만 최근에는 달라졌다는 평가도 있다. 강 대표는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룰 파동 때는 대표직은 물론 의원직 사퇴까지 내걸어 분란을 잠재웠다. 올해 초 공천심사 갈등 때도 대표직 사퇴를 불사하더니, 박근혜 전 대표가 공천책임론을 제기하자 ‘총선 불출마’ 카드를 던졌다.
하기는 그가 진작 승부사 기질까지 겸비했더라면 대권 반열에 올랐을 것이란 얘기가 많다. 1990년대 초중반 그에게는 ‘차세대 희망’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그 ‘희망’을 현실화하려면 그에게는 해결해야 할 과제이자 넘어야 할 벽이 있다. 지역 기반이 겹치는 박 전 대표와의 관계이다. 박 전 대표가 영남에 철옹성을 쌓고 있는 한 강 대표가 그 테두리를 넘어 무언가를 도모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2년 전 그는 박 전 대표의 지원을 업고 당 대표가 됐으나 이후 틈이 많이 벌어졌다.
이 대통령과의 관계에서도 대선 등을 거치면서 신뢰관계를 돈독히 했지만, 여전히 ‘이명박의 사람’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홀로서기’를 하려고 하지만 세(勢)가 모든 걸 말해주는 여의도 정치판에서 힘겨울 수밖에 없는 게 그의 현실이다. 그가 앞으로 ‘무직 생활’을 끝내고 어떤 내공을 쌓아 ‘컴백’할지 주목된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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