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고이즈미, 민영화 위해 의회 해산까지
盧정부때 공무원 4만명 늘려… 효율성 되레 추락
금융위기 겹쳐 조직개편 지연-민영화 축소 우려
“계속밀리면 물거품… 법제화로 고삐 다잡아야”
《“야전(野戰)사령관은 야전병원에 가지 않는 법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내년 공무원 정원과 임금을 동결한 데 대해 일부 부처의 민원과 항의가 쏟아지자 이 같은 말로 추가 논의 요구를 거부했다. 죽어가는 병사의 사정을 일일이 헤아리면서 작전을 펼칠 수 없듯이 어렵고 힘든 사정을 일일이 들어주다 보면 공공부문 개혁이라는 전쟁을 치를 수 없다는 뜻이었다. 강 장관의 말처럼 공공부문 개혁은 정부가 스스로에게 메스를 대야 한다는 점에서 평범한 의지로는 관철하기가 쉽지 않다. 역대 정권에서도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나기 일쑤였다. 오히려 틈만 나면 온갖 로비와 합리화로 자기증식에 나서는 공공부문에 정권이 끌려 다니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같은 맥락에서 현 정권의 공공부문 개혁 작업에 대해서도 기대와 의구심이 교차하고 있다. 최근 3차례 발표된 공기업 선진화방안에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 몸집은 커지고 체력은 떨어진 공공부문
공공부문은 특히 노무현 정부 임기 때 크게 몸을 불렸다. 2002년 말 56만2000명이던 국가공무원(지방공무원 제외) 정원은 지난해 말 60만5000명으로 늘었다. 공공기관 종사자 수도 2003년 말 19만3000명에서 지난해 말 25만9000명으로 증가했다. 특히 노 정부 임기 말에는 국무회의가 열릴 때마다 공무원 증원을 발표해 ‘공무원 늘리기 경연장’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국민의 혈세(血稅)로 공공부문을 늘리면서 노 정부는 “규모보다 효율성이 더 중요하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효율성이 개선됐다는 증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매긴 한국 정부의 효율성 순위는 2002년 49개국 중 26위에서 올해 55개국 중 37위로 떨어졌다. 공기업의 당기순이익은 2003년 31조1000억 원에서 지난해 17조4000억 원으로 감소했다.
○ 공공개혁, 정부 내부에서부터 역기류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 정권은 공공부문 개혁을 주요 국정 어젠다로 약속하고 출범했다.
그러나 미국산(産) 쇠고기 파동을 거치면서 정부의 리더십에 균열이 생기자 공공부문 개혁을 무력화하려는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개혁의 대상이자 주체인 정부에서부터 역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자유선진당 이명수 의원에 따르면 최근 교육과학기술부 등 33개 정부 부처는 5년간 공무원 8만1219명을 늘려 달라고 행정안전부에 요청했다. 상반기(1∼6월) 중 구체안을 마련하겠다던 2차 정부조직 개편은 각 부처의 반발로 계속 지연되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코미디에 가깝다. 행안부는 이 작업에 공무원노조를 ‘협상대상자’가 아니라 ‘정부안을 만드는 주체’로 포함시켰다. 당연히 개혁은 지지부진이다. 늘어나는 연금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올해도 예산에서 1조2700억 원을 지원해야 한다.
공기업 민영화도 난항을 겪고 있다. 민영화 대상으로 거론되던 공기업들이 정치권과 정부에 집요하게 매달리면서 발표가 여러 차례 연기됐고 결국 민영화 대상으로 발표된 공기업은 당초 계획인 50∼60여 개에서 33개로 축소됐다. 이런 가운데 개혁 대상에 포함된 공기업의 반대가 이어지고 있어 향후 추진 전망도 불투명한 실정이다.
○ 일본의 우정성 민영화 통해 경쟁력 제고
전문가들은 정권의 명운(命運)을 걸지 않고는 공공부문 개혁이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
일본은 2004년 나리타공항을 민영화한 데 이어 2007년에는 한국의 우정사업본부에 해당하는 일본우정공사를 민영화했다. 우정공사는 민영화 전 비정규직을 포함해 40만 명의 직원, 370조 엔의 자산을 보유한 일본 최대의 금융기관이었다. 공공기관이어서 안전하다는 이유로 민간의 금융자금을 60%나 흡수해 민간 금융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걷은 돈을 방만하게 운영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총리는 총리 직할로 우정민영화준비실을 설치하고 담당 장관을 임명해 우정공사 민영화에 나섰다. 그러나 우정공사 민영화 법안은 참의원에서 부결됐다. 그만큼 우정공사의 저항은 강력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의회를 해산하고 재신임을 묻는 승부수를 던진 후에야 민영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이즈미 전 총리는 우정공사 민영화를 공공부문 구조개혁의 핵심으로 보고 정권의 명운을 걸었다”며 “공기업 민영화는 정부가 그 필요성을 얼마나 절감하고 있는지에 달렸다”고 말했다.
○ 정부, 개혁 의지 새롭게 정비해야
이명박 정부도 공공부문 개혁 의지를 새삼 추스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높다. 어려운 대내외 여건 속에 역풍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일각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공공부문 개혁의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발(發)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국내외에서 민영화될 공기업의 지분을 살 만한 투자자를 찾기 어렵고, 팔더라도 제 값을 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도 10일 발표한 3차 공기업 선진화방안에서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 통합 결정을 연말로 미루기로 했다.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국내외 금융시장의 유동성 경색으로 공기업 개혁의 추진동력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면서도 “공기업 개혁이 유야무야되는 일을 막으려면 이럴 때일수록 분명한 의지를 밝히고 가능한 개혁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정이 약간 늦어지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법제화를 통해 민영화 방침을 확고히 밝히고, 지속적으로 공공부문 개혁을 담당할 조직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국대 곽채기 행정학과 교수는 “한국의 공기업 자산 가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4번째일 정도로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며 “공기업의 경영성과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에 민영화 등 공기업 개혁으로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높이면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 외국 정부조직 개편 사례 ▼
뉴질랜드 - 환란후 중앙공무원 9만명→3만명
아일랜드 - 임금묶고 연금개혁 재정지출 낮춰
적지 않은 나라들이 정부 조직개편을 통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변신’에 성공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뉴질랜드다.
1970년대 1, 2차 석유파동을 팽창재정으로 대응한 뉴질랜드는 재정적자가 누적돼 1984년 외환위기를 맞았다. 이 때문에 집권당이 바뀌면서 정부조직을 줄이고 기능을 적극적으로 민간에 이양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선회했다.
뉴질랜드 중앙부처 공무원은 1985년부터 10여 년 동안 약 9만 명에서 약 3만 명으로 60% 이상 줄었다. 공무원 수를 줄이면서 정책을 만드는 업무를 제외한 나머지 업무는 민간에 이양하거나 국영기업에 넘겼다. 한때 4000여 명이었던 교통국 인력은 100명 이하로 줄었다. 은행, 해운, 항공, 철도도 과감하게 민영화하고 받은 돈으로 나랏빚을 갚았다.
뉴질랜드의 전체 고용에서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7년 27%에서 1994년 20%로 줄었다. 1984년 국내총생산(GDP)의 6.5%던 재정적자는 10년 후 흑자로 돌아섰다. 민간부문의 활력이 살아나면서 국가경쟁력도 높아졌다. 복지지출을 줄여 재정 건전성을 높이고 노조가입 의무제를 폐지하며 노동시장도 개혁했다.
‘유럽의 환자’로 불리던 아일랜드도 1980년대와 1990년대 정부 조직을 개혁했다. 공무원 수를 줄이고 임금을 동결했으며 연금개혁을 통해 재정지출을 낮췄다. 민영화와 노동시장의 유연화도 추진해 지금은 유럽에서 경쟁력이 강한 나라로 꼽힌다.
중앙대 신인석 경영학부 교수는 “수술은 외부인이 하는 것이다. 정부가 공기업 등 다른 공조직의 개혁에는 성공하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수술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뉴질랜드나 아일랜드 경우처럼 의회 등 정치권이 나서지 않으면 정부 개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내걸고 취임한 이명박 정부도 정부 조직 개편을 시도했다. 하지만 공무원 6951명 감원 계획은 취임 후 3427명 감원으로 바뀌었다. 18부 4처를 13부 2처로 줄이겠다는 계획은 15부 2처로 변경됐다. ‘미완의 개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