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기 정부가 교육과학기술부를 분리해 교육부로 환원한 건 잘한 일이다. 교육 본연의 목표에 맞춰, 시대 흐름에 맞으면서도 교육을 받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에 집중해야 한다.” 김영길 한동대 총장은 13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교육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우리 교육은 국내용, 지식형, 대기업 취업용에 머물러 있다. 국제용, 융합형, 창업가형으로 교육 방식을 바꿔야 한국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적인 과학자이자 ‘작지만 강한 대학’의 개척자. 고 김호길 전 포항공대 총장의 동생이기도 하다. 고등교육을 국제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했다. 》
―박근혜 정부가 교육부로 환원시키기로 했다.
“후학을 가르친다는 교육 본연의 기능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본다. 특히 교육부가 대학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교육부 장관 내정자인 서남수 전 교육부 차관이 교육행정 경험이 많기 때문에 혼란도 없을 거라 본다. 다만 차기 정부는 대학을 평가할 때 연구 결과나 교수 업적 중심으로 순위를 매길 게 아니라 학교의 주인공인 학생들이 어떤 교육을 받고 있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지금 교육이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 특히 위기라고 진단하는지….
“한국이 반세기 만에 이렇게 발전한 것은 산업화 시대에 맞는 교육 덕분이다. 모방과 추격을 잘하도록 가르쳐 정형화된 산업화 인재를 키운 결과 단기간에 세계 1위 기업을 따라잡았다. 문제는, 앞으론 답이 없는 것을 찾아가야 하는 시대가 됐다는 점이다. 세계 곳곳에서 예상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나는데, 복잡하고 역동적인 세상에서 살아나갈 준비를 아이들에게 시키는지 의문이다. 창의성을 발휘하고 국제화 감각을 갖도록 가르치지 않으면 금세 뒤처질 수밖에 없다.”
―창의성을 실제로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는 막막하다.
“창의란 지혜를 뜻한다. 20세기는 지식이 주도했지만 이제는 인터넷만 뒤지면 모든 지식이 검색된다.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고 분별하느냐가 바로 지혜다. 아직도 우리 학교교육은 지식만 가르치고, 책에 있는 걸 암기해 시험 문제를 찍는 훈련을 시킨다. 지혜 교육이 실종됐다. 창의를 일깨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아인슈타인처럼 한우물을 계속 깊이 파게 하거나, 에디슨처럼 여러 우물을 파서 우물끼리 연결하면서 새로운 걸 발견하는 방식이다. 우리 교육은 온갖 장벽을 높이 둘러놔서 ‘멀티 우물’을 막고 있는 게 심각한 문제다.”
―어떻게 하면 여러 우물을 연결하는 방법을 가르칠까.
“영화 ‘레미제라블’을 패러디한 동영상 ‘레밀리터리블’ 봤나? 유튜브에 올린 지 닷새 만에 조회수 300만 건을 넘을 만큼 기발하고 뛰어난 작품이다. 레밀리터리블을 감독한 정다훈 중위가 우리 학교(한동대 06학번) 출신이다. 한동대는 정해진 전공이나 학과가 없이 모든 학생이 자율전공으로 원하는 진로를 설계한다. 정 중위도 시각디자인과 영상, 산업을 연계해 공부했다. 지금 우리 대학은 박스(전공)만 있다. 박스를 다 풀어놓고 아이들이 아무거나 선택해서 완전히 뒤섞도록 함으로써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해야 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문과와 이과를 갈라놓고, 한창 아이디어가 넘치는 20대 초반에 틀에 박힌 전공을 배우게 해서는 안 된다.”
―대학의 전공을 없애야 한다는 말인가.
“석사나 박사 과정이라면 한 분야에 몰두해 교수의 지도를 받으면 된다. 그러나 학부생은 교수보다 훨씬 창의적이다. 그런 능력을 케케묵은 전공의 틀로 막아놓으면 안 된다. 아직도 1960년대에 만든 전공이 대학마다 버젓이 있다. 대학이 바뀌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교수들 때문이다. 자기 분야의 벽을 높이 쌓아서 다른 것에는 아예 관심도 없고 단절됐다. 지금 사회는 벌써 경계가 없어졌는데 말이다.”
―각계에서 융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빌 게이츠가 하버드대를 끝까지 다녔다면 저렇게 성공하지 못했을 거다. 한 가지 전공에 갇히기 시작하면 새로운 걸 이뤄내기 힘들다. 에디슨이 전기투표기를 발명한 게 어머니에게 개인지도를 받던 21세이고,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것이 특허청 직원 시절이던 25세 때다. 융합은 어릴 때 틀을 깨야 가능하다. 적어도 교육중심 대학의 학부 과정이라면 아이들이 다양한 전공을 마음껏 선택해서 융합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대학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을 많이 했는데….
“우리 대학들은 학생을 잘 뽑는 데만 관심이 있지 잘 가르치려는 노력은 별로 안 한다. 점수가 높은 학생을 뽑아만 놓고, 학생들이 각자 스펙을 쌓게 만든다. 왜 그러겠는가. 교육부나 일부 언론사의 대학 평가가 교수들의 연구 실적 위주이기 때문이다. 교수들이 논문 쓸 생각만 하느라 아이들을 가르칠 생각은 안 한다. 국내 대학 가운데 연구중심대학은 10∼20%도 안 된다. 졸업 후 취업이나 창업을 할 80%의 대학생을 위한 교육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는 대학에 많은 예산을 지원했다.
“연구 실적 위주이고,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처럼 외국 학자에게 거액을 퍼주는 식으로 돌아갔다. 대학 순위 높이고 노벨상 노리는 데 정부 돈을 다 쓴 거다. 그나마 이명박(MB) 정부에서 잘한 것이 학부교육선진화선도대학(ACE) 사업이다. 두뇌한국(BK)21이나 WCU 사업에 몇천억 원씩 쓸 게 아니라, 정말 잘 가르치는 대학을 찾아 300억 원만 지원해보자고 내가 제안해 이뤄진 사업이다. 차기 정부도 학생을 제대로 가르치는 대학에 예산을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연구나 봉사도 중요하지만 대학의 핵심 역할은 교육이다.”
―대학보다 초중등 교육을 더 걱정하는 여론도 높다.
“대학이 선발에만 관심을 두다 보니 초중등 교육까지 휘둘린다. 소위 SKY 대학을 목표로 하는 국내용 공부만 시킨다. 어느 대학에 가면 내가 필요로 하는 능력을 어떻게 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없는 구조다. 학부모나 고교 교사 모두 학교를 먼저 정해 놓고 점수에 맞춰 학과를 정한다. 그러니 소위 명문대일수록 자기 전공을 안 좋아하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다.”
―대입도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이제 대학은 점수가 아니라 잠재력과 열정으로 학생을 뽑아야 한다. 입학사정관 전형의 본래 취지가 바로 이런 거다. 우리 학교는 80%를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뽑는다. 국제적인 사고, 성실성, 열정, 동기, 수학 능력을 고루 본다. 4년간 우리 학교에서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인재인가를 본다. 대학의 선발이 이렇게 바뀌어야만 초중고교가 바뀔 수 있다. 차기 정부가 대학 입시를 간소화할 거라고 들었다. 제도를 간소화하는 데 집착하지 말고 대학들이 잠재력 있는 학생을 제대로 뽑도록 해야 한다.”
―글로벌 인재 양성을 강조했는데….
“한국은 전 세계의 0.8%도 안 되는 인구, 1.6%도 안 되는 국내총생산(GDP)을 보유한 나라다. 국내에 머물러서는 먹고살 길이 없다. 국제화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나라다. 그런데 교육은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는 데 필요한 내용, 즉 글로벌 시티즌십을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국제무대에서 중요한 건 유창한 영어보다 세계시민으로서의 자질이다.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 신뢰, 정직, 에티켓이 필수다. 이런 능력을 길러야 진취적인 미래도 가능하다. 젊은이들이 국내 대기업에 취직하기보다 세계로 나아가는 걸 꿈꾸게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새 정부에 가장 바라는 점은….
“박근혜 당선인이 잘 잡은 포인트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는 대기업이 성장을 이끌었지만 이제는 중소기업을 강하게 길러야 한다는 점이다. 금융과 서비스만 찾다가 유럽과 미국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제조업과 서비스를 결합해 중소기업을 다져온 독일은 성공 가도를 걷고 있다. 어릴 때부터 창업가 정신을 가르쳐야 한다. 대학을 졸업하면 아이들이 벤처를 창업하고 중소기업을 이끌도록 열정을 심어줘야 한다.”
―교육 정책에서 가장 유념해야 할 메시지가 있다면….
“선진국 교육의 근본 목적은 미래 준비다. 더는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교육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인력 교육에서 인간 교육으로’ 이동해야 한다. 산업화 시대에는 사람 자체를 노동력, 부품으로 봤다. 젊은 인력이 나오면 새로 가져다 쓰고 그랬다. 이제는 사람을 인간으로 보는 교육을 해야 한다. 사회에 기여한 세대의 지혜를 중시하는 인성 교육에 신경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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