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처음 등원했을 때의 목표를 어느 정도나 이뤘나”라는 질문에 더불어민주당 김관영 의원(초선·전북 군산·사진)은 깊은 한숨부터 쉬었다.
야당의 고질병인 계파 갈등에 대해 물었다. 김 의원은 “막상 안에 들어와 보니 밖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고 했다. 그는 “만약 저녁을 100번 먹는다고 하면, 다른 계파 의원과 저녁을 같이하는 경우는 많아야 한 번 정도”라며 “계파가 다른 사람과는 거의 접촉이 없다”고 했다. 그는 “당내에는 ‘다른 계파 의원을 왜 알아야 하느냐?’는 분위기가 있다. 나 역시 그런 분위기를 깨려는 노력은 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지난해 2·8 전당대회 당시 ‘여론조사 룰 논란’을 계파 갈등이 가장 극심했던 순간으로 꼽았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지지후보 없음’을 전체 득표율에서 제외할지 여부를 두고 친노(친노무현)와 비노(비노무현) 진영은 막말이 오가는 날 선 공방을 벌였다. 김 의원은 “같은 당에서, 통합을 위한 전당대회를 하는데 너무 거칠게 싸우는 모습을 보며 자괴감을 지울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쟁점 법안을 놓고 벌이는 여야 대립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김 의원은 2014년 12월, 본회의에 반대 토론자로 나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의 부결을 이끌어 냈다. 여야 지도부가 합의했던 ‘당론’을 뒤집은 유일한 사례지만, 그는 “쟁점 법안에 의원 개개인의 의견은 없다”고 했다. ‘당론의 늪’ 때문이다.
김 의원과의 인터뷰는 2015년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12월 31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이날 여야는 미뤄놨던 무쟁점 법안 212개를 무더기로 통과시켰다. 그는 TV에 나오는 본회의장을 가리키며 “당이 반대하라고 하면 반대하고, 무쟁점 법안은 오늘처럼 그냥 (찬성으로) 프리패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크라우드펀딩법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온라인을 통해 소액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한 이 법은 2013년 6월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는 데 2년 넘게 걸렸다. 김 의원은 “당내 일부에서는 반발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소액 투자 활성화를 통해 벤처기업을 활성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 법안에 찬성표를 던지지 못했다. 당론으로 반대한 야당이 본회의에 아예 불참했기 때문이다. 그는 “법안 취지에 동의했지만 당론을 거스르지는 못했다”고 했다.
왜 ‘당론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까. 김 의원은 “당론에 따르는지, 튀는 발언을 하는지 등을 공천하는 데 반영하지 않느냐”며 “초·재선은 아무래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못했다는 비판을 인정한다”면서 “초선 의원의 한계였다고 변명하겠다”고 덧붙였다.
역대 최악의 국회로 평가받는 19대 국회에 대해 그는 “국회가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에 맞는 법안을 만들어 기업들이 더 열심히 뛸 수 있도록 국회가 도와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자성했다.
야당의 뿌리 깊은 ‘반기업 정서’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도 인정했다. 김 의원은 “일부 의원은 대기업이 돈을 버는 것을 너무 싫어한다”며 “물론 대기업도 고칠 것은 많지만, 대기업이 투자를 많이 할 수 있도록 해 일자리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 “이 인터뷰가 나가면 당내 일부에선 또 ‘대기업 프렌들리’라며 나를 비판할지도 모른다”면서도 “야당도 기업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라 전체의 부를 늘리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김관영 의원은
공인회계사 출신으로 행정고시, 사법시험에 모두 합격해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사무관, 김&장 변호사를 거친 초선 의원(47). 야당의 대표적인 ‘경제통’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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