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다는 말부터 꺼냈다. 그동안 자신의 의원실로 접수된 민원의 90% 이상이 법을 위반할 수밖에 없거나 압력을 행사해야 하는 ‘청탁성’ 민원이었다고 고백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의원(52·초선·충남 공주·사진)의 얘기다. 박 의원은 국회의원 청탁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다고 털어놨다. “조금 전에도, 밥 먹듯이 이런 일을 하는데….” 5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난 박 의원은 인터뷰 내내 지역구 민원에 ‘노예처럼’ 발목 잡혀 지낸 지난 4년을 회고했다.
국회에 들어오기 전만 해도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는 말이 남 얘기로만 들렸다. 하지만 그는 지난 4년 동안 바로 자신이 늘 그런 심정이었다고 했다. 박 의원은 “서운한 사람이 생기더라도 단호하게 거절하는 게 민원인을 위해서도 좋은 건데 솔직히 ‘표’ 때문에 압력을 넣을 때 가장 부끄러웠다”고 했다. 때로는 민원인에게서 입법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지만 대부분 해결이 어려운 악성 민원이었다. 통상 정부 해당 기관에서 해결하지 못했을 때 거의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대상이 국회의원이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민원일지를 만들어 철저히 관리하지만 아예 기록하지 않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청탁이고 압력이고 위법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에 기록하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 의원은 안희정 충남지사의 친구이자 충남도 정책특별보좌관을 지낸 탓에 연초 인사 때면 충남도 공무원들의 인사 청탁을 많이 받는다. 지역 건설업체로부터 공사 수주를 도와달라는 민원은 물론이고 심지어 떼인 돈을 받아달라는 부탁도 있다. 그는 “다행히(?) 민원 성공률은 10건 중 1건에 불과하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인사 청탁은 거의 성공한 적이 없다고 한다.
“민원인에게 해결됐다고 이야기하는 순간은 ‘아이고 내가 이 표는 안 잃었다’며 안도하지만 한편으론 ‘내가 국회의원이 맞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그는 “지역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지극정성으로 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박 의원은 자신이 국회의원으로서 지역구 주민을 대표해야 할지, 전체 국민을 대표해야 할지가 늘 고민이었다고 했다. 그는 “대개 국가의 이익과 지역의 이익이 충돌할 때 당연히 지역 주민을 설득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나 자신도 우선순위가 뒤바뀌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초선인 그는 자신을 알리기 위해 지역구민에게 문자메시지 등으로 의정활동을 일일이 알리는 것도 낯부끄러웠다고 했다. 그는 “솔직히 지역에 예산 몇 푼 땄다고 자랑하고 홍보하는 것도 꼴불견”이라며 “당직을 맡아 지역을 자주 찾지 못해 방송 출연 일정 등을 문자로 보내면서도 국회의원답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처음 국회에 들어올 때만 해도 그의 목표는 ‘서민의 대변자’가 되는 것이었다. 공주에서 버스로 출퇴근하며 늘 주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려 했고, 서민주거 안정을 위한 임대주택법도 통과시켰다. 하지만 그는 “4년을 국회의원 훈련하듯이 보낸 것 아닌가 무척 부끄럽다”고 했다.
※ 박수현 의원
서울대 서양사학과에 진학했지만 학생운동을 주도하다 중퇴했다. 국회 보좌진으로 8년간 일했으며, 안희정 충남지사의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이었다. 19대 초선의원으로 당 대표 비서실장, 당 대변인을 지냈고 현재 원내대변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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