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현안 거리 두고 ‘묵언수행’… 닉슨의 재기과정 ‘열공’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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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대선 시동거는 주자들]<1> 김무성 새누리당 前대표

《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예비 주자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달 한국을 찾아 대선 출마에 무게를 두는 발언을 쏟아내면서다. 하지만 아직까지 누구도 ‘대세론’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현재 지지율이 ‘허상(虛像)’이라는 점은 역대 대선에서 입증됐다. 대선 정국을 관통할 시대정신을 누가 선점하고 주도하느냐가 관건이다. 동아일보는 예비 주자들의 고민과 향후 진로를 전망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7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열린 ‘불평등,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토론회에 참석했다. 정치인들은 대부분 앞자리를 차지했지만 김 전 대표는 유독 일반 방청객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축사를 하거나 눈도장만 찍고 토론장을 빠져나간 다른 정치인과 달리 홀로 3시간 동안 토론장을 지켰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토론회가 끝난 뒤 “오늘 정치인이 많이 오셨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열심히 공부한 분은 김무성 전 대표인 것 같다. 한 말씀 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김 전 대표는 끝까지 손사래를 치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날 김 전 대표의 모습은 현재 그의 고민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그는 4·13총선 참패 뒤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며 ‘묵언수행’ 중이다. 정진석 원내대표, 친박(친박근혜)계 좌장 최경환 의원과의 ‘3자 회동’ 사실이 알려졌을 땐 “의견을 교환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는 입장 자료까지 내며 정치 현안과 거리를 뒀다. 일각에선 ‘정치적 결벽증 아니냐’는 뒷말이 나올 정도다.

그런 김 전 대표가 공개 토론회 자리를 지킨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토론회가 끝난 뒤 기자들의 질문에 일절 대답하지 않았지만 예외가 있었다. 바로 토론회 주제를 두고서다. “우리 사회의 제일 큰 문제는 양극화다. 국가적 위기 상황을 극복하려면 통합된 국민의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양극화가 심해지면 사회적 분열도 심화된다. 그렇기에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김 전 대표가 사실상 내년 대선 화두로 ‘격차 해소’를 던진 셈이다. 반성과 참회 속에서도 정치적 재기를 위한 자신만의 승부수를 준비하고 있다는 의미다. 김 전 대표는 최근 주변에 “경제가 계속 내리막길을 걸으면 연말쯤 민심의 분노가 폭발할 수 있다”며 “이대로는 새누리당의 정권 재창출은 물 건너간다”고 우려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김 전 대표가 보수 정권 재창출을 위해 ‘큰 그림’을 그리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새누리당의 발전적 해체를 통한 정치권 ‘새판 짜기’의 한 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평소 “정치는 생물”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다.

하지만 그가 먼저 ‘창당 깃발’을 들기에는 한계도 명확하다. 정치적 대결 국면마다 30시간을 버티지 못한다는 ‘30시간 법칙’은 그에게 치명적이다. 껄끄러운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 정립도 쉽지 않은 과제다. 일각에선 “친박계가 장악한 새누리당이 더욱 패권주의적 행태를 보일 때 김 전 대표에게 활로가 열리지 않겠느냐”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 전 대표가 판을 주도하긴 힘들 것이란 얘기다.

김 전 대표 측에선 미국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재기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닉슨은 아이젠하워 정권에서 40세에 부통령에 취임해 8년간 정권의 실세로 군림했다. 하지만 이런 ‘고속 성장’은 독이 됐다. 1960년 대선에서 존 F 케네디보다 고작 네 살 위였는데도 ‘늙은 여우’라는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한 것. 2년 뒤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도전했지만 역시 패하며 정치적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6년간 와신상담한 끝에 1968년 대권을 거머쥐었다.

김 전 대표는 2일 충북 단양군 구인사를 찾아 “마음에 쌓인 먼지를 떨어내고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겠다”라고 했다. 그는 이미 4년 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정치인생 30여 년을 응축한 그의 마지막 정치적 승부수는 무엇일까.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강경석 기자
#김무성#2017 대선#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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