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전 서울시장(55)이 서울 종로구 혜화동 로터리 부근에 마련한 사무실 이름이다. 기자가 9일 오전 방문한 이곳은 집기 배치가 끝나지 않아 어수선했다. 건물 2층에 마련된 66m²(20평) 남짓한 사무실에는 정리 안 된 종이 박스들과 책상, 의자 등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아직 현판도 걸려 있지 않았다.
두 달 전 ‘정치 1번지’ 종로에서의 4·13총선 패배로 정치적 내상을 크게 입은 그는 요즘 자숙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1년 시장직 사퇴 후 정계 복귀를 노렸지만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의원에게 약 13%포인트 차로 패하자 외부 활동은 사실상 중단했다.
휴식과 향후 정국 구상을 위해 외국에 잠시 머물고 있는 오 전 시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아직 선거가 끝난 지 얼마 안 됐다. 3개월 정도는 공개 행보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좀 더 자숙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다만 새누리당 종로구 지역위원장으로 지역구 주요 행사 등에는 참석하고 있다.
오 전 시장이 마련한 연구소는 최소한의 정치적 활동을 하기 위한 공간이다. 그는 “앞으로 ‘공존과 상생’을 연구하자는 취지에서 고르게 바르게 잘살기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소개했다. 경쟁에서 낙오하고 경쟁의 대열에 끼어 보지도 못한 사람들을 보듬고 일으켜 세워 함께 잘 살아가는 정치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는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선 “아직 부족해 보충해야 할 부분이 많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배워 나가겠다”며 여운을 남겼다. 오 전 시장은 연구소를 평소 만나지 못했던 인사들과 만나는 장소로 활용할 예정이다. 이곳은 길 건너 편 자신의 아파트에서 걸어서 3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어서 사람 만나기에도 수월하다. 구체적인 ‘오세훈 표 어젠다’를 추가로 만들기 위한 사전 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오 전 시장은 총선을 앞두고 여권 내 대선주자 지지율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선거 초반 각종 여론조사에서 경쟁자를 앞섰다. 서울지역 선거대책위원장으로 당과 후보자들의 요청에 다른 지역구 유세에도 나섰다. 하지만 정작 종로구 주민들에게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오 전 시장은 “나의 실수였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여러 조언을 해주는 멘토가 있었는데 이번 총선에서는 없었다”며 아쉬움을 털어놨다.
오 전 시장은 9일자 한국일보 창간 여론조사에서 5.5%를 얻어 당내 주자 중에선 1위로 나타났다.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제외하면 당내에선 뚜렷한 대선 주자가 부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총선 패배를 의식한 듯 “나는 5%짜리”라고 말하고 다닌다. 반 총장이 여론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을 때는 10%에 달했던 지지율이 반 총장이 포함된 뒤 반 토막으로 떨어지자 낮은 자세를 취한 것이다. 하지만 반 총장의 등장으로 오 전 시장이 다크호스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여권 내 대선 레이스에 나설 후보군으로 그의 이름은 계속 거론되고 있다.
다만 오 전 시장이 복귀할 창구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일각에선 8월로 예정된 새누리당 전당대회 출마도 권유했지만 그는 “전혀 나갈 생각이 없다”고 일축했다. 대권과 당권 분리 규정을 폐기한다고 해도 너무 일찍 전면에 나서는 것은 총선에서 패배한 정치인으로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지난달 정진석 원내대표의 당 혁신위원장 제안에도 “내가 선거에서 졌는데 누구한테 잘못했다고 얘기를 못할 것 같다”며 고사하기도 했다.
오 전 시장은 일단 백지 상태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대선 정국이 요동칠 때쯤 자신의 역할을 찾아 본격적으로 정치적 행보를 재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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