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저 멀리 내 신념이 보인다. 그러나 숲(대선)에 들어가면 봉우리(신념)가 안 보일 수 있다. 숲에 들어가도 봉우리를 잊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다.”
17일 충남 아산 온양관광호텔에서 만난 안희정 충남도지사(51)는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이같이 답했다. 당 안팎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고 있지만 아직 결심을 굳히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봉우리’라고 표현한 출마의 목적에 대한 고민은 이미 끝낸 듯했다.
안 지사는 기초노령연금 논란 등의 예를 들며 “선거에서 정치인과 이익집단이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표를 교환하게 되면 국가의 미래가 어두워진다”고 했다. 이어 “현재의 이익 조정도 필요하지만, 정치인들은 미래에 대한 가치와 방향을 제시하고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지사는 자신이 생각한 대한민국의 발전 방향으로 ‘지방자치분권’을 꼽았다. 그는 “지금 벌어지는 모든 문제는 중앙으로 집중된 국가 관료 시스템의 한계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며 “주민들이 참여하는 행정과 정치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자치분권 국가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권의 대선 주자 중 유일한 지방 광역자치단체장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그는 “선거공학적 차원에서 유·불리를 생각하고 움직이면 지도자가 아니다”라며 “정치인의 직업윤리는 (국가의) 가치와 방향을 이야기해야 한다”라고 했다.
충남도지사를 두 차례 연임한 안 지사는 ‘큰 꿈’을 숨기지 않았다. 2013년 말 송년 기자회견에서는 “정신적으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뒤를 잇는 장자라는 자부심과 집안을 이어나가는 맏이가 되겠다는 포부가 있다”고 밝혔다. 4·13총선이 끝난 뒤에는 “불펜 투수로 몸을 풀겠다”, “직접 슛을 때릴지 고민 중”이라며 차기 대선에 나설 수도 있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쳤다.
그럼에도 안 지사는 결단의 시점은 늦추고 있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는 “의도적인 존재감 과시”라는 분석과 “당 후보 경선을 준비하는 수순”이라는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충남도 정무부지사를 지낸 더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대선 국면에 ‘나도 있다’는 정도지, 출마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안 지사의 행보가 관심을 모으는 것은 야권 대선 레이스를 흔드는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재선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고, 지방자치단체장으로 두 차례 당선된 50대의 안 지사는 문재인 전 대표가 독주하는 판을 흔들 수 있다”고 했다. 또 “호흡을 맞췄던 측근들이 20대 국회에 입성한 것도 플러스 요인”이라고 했다. 김 의원 외에 비서실장 출신의 조승래 의원, 도지사 선거 캠프를 총괄했던 정재호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안 지사가 실제로 대권 가도를 달리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벽도 만만치 않다. 당장 낮은 지지율과 친문(친문재인) 진영에 비해 약한 당내 세력 등이 불리한 요인이다. 그러나 안 지사는 최근 당 핵심 관계자를 만나 “(당내 세력 대결 등) 선거공학적인 판단으로 출마를 결정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2002년 대선에서 불법 자금을 조성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징역 1년의 실형을 산 전력은 안 지사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당 관계자는 “안 지사는 이후 공직을 맡지 않았고, 18대 총선에서도 이 문제로 공천을 받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었다”며 “대선 국면에서 여당에 공세의 빌미를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표 측도 안 지사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문재인 대 안희정’의 구도가 만들어지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안 지사는 “아직 (문 전 대표와) 실제로 경쟁관계에 서게 될지는 모른다”며 조심스러워했다. 그러면서도 “서로 간에 선택받을 일이 있다면 공개적으로 국민, 당원들께 선택을 물으면 된다”며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낡은 정치 문화 대신 비전과 정책을 놓고 경쟁하는 새 정치의 유형을 보여주지 않겠느냐”고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