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후 북핵 대화 국면에서 종종 ‘서울의 베이징 외교 소식통’들을 만날 때마다, 단연 주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평양 방문 시점이었습니다. 시 주석은 올해 1월까지 모두 네 차례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베이징 등으로 불러들였지만, 약속한 평양 답방은 미루어왔습니다. 소식통의 전언을 시기적으로 복기하면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최고지도자인 시 주석의 평양 방문 시기를 놓고 매우 오랜 시간 고민을 거듭해 왔습니다.
지난해 9월 초 소식통을 만났을 때 역시 시 주석의 방북설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앞두고 싱가포르 북-미 1차 정상회담 이후 공전 상태였던 비핵화 대화가 다시 활로를 모색하던 시기였습니다. 김 위원장이 이미 3월과 5월, 6월 세 차례 중국을 방문해 시 주석을 만난 상태였기 때문에 당연히 시 주석이 평양을 방문해 회담 진전을 위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파다했습니다.
하지만 소식통들은 이런 관측을 부인했습니다. 시 주석은 아직 한 번도 평양에 가겠다는 의시표시를 한 적이 없고, 시 주석이 평양에 간다는 해외언론들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는 겁니다. 한 소식통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베이징에서는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판단이 더 강합니다. 싱가포르 회담이 끝난 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회담이 빨리 진전되지 않는 원인을 중국에 돌렸습니다. 이른바 ‘중국 배후론’이죠. 이런 가운데 시 주석이 평양에 가게 되면 중국이 스스로 배후론을 인정하고 확인하는 모양새가 될 우려가 있습니다. 오히려 내년(2019년)은 중국과 북한이 국교를 수립한지 70주년이 되니 이를 기념하는 명분으로 방북하는 것이 옳다는 기류가 많습니다.”
실제로 시 주석은 지난해 방북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1월 8일 김 위원장을 다시 한번 베이징에 불러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북-중 양국 공조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2월 말 하노이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회담이 결렬로 끝났지만 시 주석은 역시 방북 카드를 쓰지 않았습니다. 4월 1일 만난 베이징 소식통에게 다시 전망을 요청했습니다.
“하나도 정보 없이 분석하는 겁니다. 6월에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가 있잖아요?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되면 일본에 가시게 될 겁니다. 아베 총리가 지난해 중국을 방문했고 중일 관계가 좋아지는 상황입니다. 일본에 가는데 한국에 안 오면 한국 분들 서운해 하시잖아요. 문재인 대통령도 중국을 방문하신 상황이고. 한국에 오시게 되면 북한 안 찾아가면 서운하겠지요. 그런 이유로 6월 중에 동북아 3국 방문이 이뤄지지 않을까 합니다.”
시 주석이 20일과 21일 평양을 방문한다고 17일 오후 북한과 중국이 동시에 발표하면서 이 소식통의 ‘정보 없는 분석’은 맞아 떨어졌습니다. 시 주석이 한국도 방문할 것이란 전망만 빼고 말이죠. 어제 양국 발표를 두고 다양한 분석들이 나오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중국 지도부가 시 주석의 평양 방문을 놓고 지난해부터 고민해 왔으며 올해 성사를 목표로 고민해 왔다는 점입니다. G20 일본 회의를 계기로 하는 것이 유력한 선택지였고, 최근 그것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무역과 5G 기술 전쟁 등 다방면에 걸친 미-중 패권전쟁의 심화 과정에 이뤄지는 시 주석의 이번 방북은 하노이 회담 이후 공전상태인 북-미 비핵화 대화와 남북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여러 정황을 고려하면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크게 보면 시 주석의 이번 방북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과 중국, 러시아와의 전통적인 우방관계를 강화하는 수순으로 볼 수 있습니다. 4월 김 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이은 14년만의 중국 최고지도자 방북은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지적한 ‘중국 배후론’을 사실상 공개적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시 주석은 이달 초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북한 비핵화와 북한의 안전보장 및 경제 발전을 맞교환해야 한다”고 언급했고 쑹타오 대외연락부장은 어제 “중국은 북한이 새로운 전략 노선을 실시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새로운 전략 노선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언급한 “정전협상 당사자들과의 긴밀한 연계 밑에 조선반도의 현 정전체계를 평화체계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협상”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1월 8일 북-중 4차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한반도 정세 관리와 비핵화 협상 과정을 공동으로 연구·조정해 나가는 문제와 관련해 심도 깊고 솔직한 의사소통을 진행했다”고 밝힌 대목과도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요컨대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은 중국 및 러시아와의 동맹관계 속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한국과 일본의 3각 동맹 및 협력관계의 이해를 저해하는 것이지요. 이미 중국과 러시아는 대규모 인도적 식량 지원 및 비공식 에너지 지원 등을 통해 미국이 이끄는 국제사회의 제재 레짐을 완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중러 3국의 최근 정상 간 대화는 이를 위한 정치적 스크럼을 강화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경제와 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중국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미국이 중국이 가진 대북 레버리지를 더 활용해 달라고 요구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의 노력에 적지 않은 차질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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