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돋보기]현실 눈감고 투기 잡겠다니…

  • 입력 2007년 10월 2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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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면적 85m²(25.7평) 초과 중대형 아파트에 청약할 때 적용되는 채권입찰제는 분양가 상한제로 싸진 분양가와 주변 시세 사이의 차익을 환수하기 위해 도입됐다. 이 제도는 2006년 8월 경기 성남시 판교신도시 동시분양 때 부활돼 적용됐다.

분양가 상한제로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싸게 책정되면 아파트를 분양받은 수요자가 그 차익만큼 이득을 얻기 때문에 아파트 당첨으로 얻은 이득을 환원하라는 취지였다. 투기적인 가(假)수요를 줄이고 실수요자의 당첨 확률을 높인다는 의도도 있었다.

정부는 지난달부터 ‘시세차익 환수’와 ‘실질 분양가 인하’라는 정책 목표를 조화롭게 달성하겠다며 채권매입상한액을 설정하는 기준을 주변 시세의 90%에서 80%로 낮췄다.

그런데 최근 수도권 공공택지에서 분양가 상한제 대상 아파트가 늘고 있지만 중대형 아파트에 채권입찰제가 적용되는 단지가 드물다.

이유는 중대형 아파트의 분양가가 주변 시세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비싸 채권입찰제를 적용할 요건이 안 되기 때문이다. 채권입찰제는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쌀 때만 의미가 있는데 현실에서는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싸다고 해서 ‘로또 아파트’로 불린 경기 용인시 흥덕지구 호반베르디움(158m² 236채)조차 채권입찰제가 적용되지 않았다.

건설사 분양가는 1060만 원으로 주변 시세(약 1325만 원)의 80%였다. 채권매입상한액 설정 기준인 80%를 꽉 채워 버린 것.

이달 말 경기 파주시 운정신도시에서 동시 분양될 중대형 아파트도 예상 분양가는 3.3m²당 1000만 원 선인데 주변 시세가 700만∼800만 원대에 그쳐 채권입찰제가 적용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분양가와 주변 시세의 역전 현상이 빚어지는 것에 대해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가 투기를 잡는 데만 골몰해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재단한 결과가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공공택지에서 중대형 아파트를 짓는 땅은 건설사들이 입찰을 통해 공급받기 때문에 땅값이 최초 입찰가의 몇 배에 달한다.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해도 분양가는 비싸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외면한 부동산 정책은 실효성을 얻기 어렵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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