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경기 성남시 대한주택공사 본관에서 실시된 주공에 대한 국정감사는 ‘모르쇠’와 ‘사과’로 점철된 이상한 국감이었다.
박세흠 주공 사장은 의원들의 거듭된 질문에도 대부분 본인이 재직하기 전에 일어난 사안이라서 잘 모른다거나 무조건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허탈해진 의원들이 “질의를 미리 보냈는데도 공부를 안 해 오면 어떡하나”라고 호통을 칠 정도였다.
당초 주공에 대한 국감은 31조 원에 이르는 부채와 박 사장의 ‘변양균-신정아 게이트’ 연루설 등 현안이 많아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제대로 된 공방 한 번 없이 싱겁게 끝났다.
속 빈 국감은 이미 며칠 전부터 예견됐다. 주공 본사에서 열린 국감 리허설에서 박 사장은 예상 질의 내용을 받아보고 난감해했다. 질의의 대부분이 취임 이전의 내용이라 상황 파악이 힘들다는 것이다. 대우건설 대표를 지낸 박 사장은 올해 3월 낙하산 논란과 함께 주공 사장에 취임했다.
박 사장은 리허설 막바지에 “어차피 의원들이 제대로 답변할 시간도 안 줄 테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신정아와 관련된 얘기라면 3∼4시간은 끌 수 있을 텐데…”라고 말해 임직원들이 한바탕 웃기도 했다.
의원들의 질의 내용도 함량 미달이긴 마찬가지였다. 매년 되풀이되는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의원 측 한 관계자는 “국감 당일 오전에서야 질의 내용을 겨우 완성했다”며 “대선 정국이라 국감에 집중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참고인과 증인들의 태도까지 국회의 권위를 무시하기에 이르렀다. 참고인으로 출석한 한 건설교통부 공무원은 국감이 한창 진행 중인데도 휴게실에서 쉬고 있다가 위원장의 경고를 받기도 했다.
주공은 정부의 주택정책을 집행하는 공기업으로 국민임대주택 100만 채 건설 등 중요한 사업들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에게 사업 내용을 숨김없이 공개하고 1년간의 결과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더욱이 정부가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해 공기업의 역할을 크게 확대해 놓은 만큼 주공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번 국감처럼 준비 안 된 질문과 ‘소나기만 피하자’는 식의 무성의한 답변이 이어진다면 주택정책이 제대로 구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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