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도심에서 드물게 공급되는 1000채 이상 대단지라지만 이것만으로 수요자의 관심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모델하우스 내부와 공사 현장을 살펴봤다. 먼저 25개 동(棟) 모두 1층 전체를 빈 공간으로 두는 '필로티' 설계가 눈길을 끌었다. 기둥만 있는 1층의 높이가 5m를 넘어 일반 아파트로 따지면 1~2층을 비워두는 셈. 통풍이 잘 되고 개방감이 있지만 업체로서는 50채(25개 동×2개 층)를 덜 짓게 되므로 수익이 준다. 이는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층에 따라 최고 70㎡의 테라스 제공도 눈에 띄었다. 분양가를 당초 계획보다 내렸다는 얘기도 들린다.
D건설 관계자는 "(미분양 사태를 고려하면) 땅을 살 때 예상했던 이익을 따질 때가 아니다."며 "미분양을 피할 수만 있다면 뭐든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미분양 사태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아파트 품질을 높이고 업체의 과도한 이익을 줄이는 계기로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직후 미분양이 급증했던 1998년에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다.
당시 경기 용인시 수지읍에 공급된 L아파트는 단지 내 조경으로 주목받았다. L건설은 한 개 동을 없애면서까지 조경 면적을 넓혔다. 나무를 심는 비용만 수백 억 원이 더 투입됐다.
이 아파트 조경이 고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자 다른 업체들도 앞 다퉈 조경에 투자를 늘렸다. 이후 친환경과 조경 등이 '한국형 아파트'의 새로운 테마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품질만 높인다고 시장을 떠난 고객의 발길을 돌릴 수 없다. 가격도 웬만큼 저렴해야 한다. 지금 전국에 미분양 아파트가 13만 채나 쌓여 있지만 분양가를 크게 내린 곳은 드물다. 여기에는 '일단 버텨보자'는 심리도 깔려 있다.
이 때문에 "건설업체들이 과거 말뚝만 박으면 분양되고, '대박'이 흔하던 시절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최근 미분양 사태를 계기로 주택 품질은 한 단계 높아지고, 건설업계 전반에 '대박' 대신 안정된 수익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이익이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