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특집]현장에서/“보금자리 주택 ‘로또’ 당첨… 시름만 더 깊어졌어요”

  • 입력 2009년 10월 15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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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걱정입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꼭 입주하고 싶은데…”

보금자리주택 청약 현장접수 첫 날인 7일 오전. 목발을 짚고 경기 수원시 보금자리주택 홍보관에 들어선 이모 씨(41)의 얼굴은 그의 목발처럼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반값에 내 집이 생긴다’는 꿈에 가족들과 가을 나들이를 하듯 환한 얼굴로 접수장을 찾은 많은 신청자들 사이에서 이 씨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날 현장접수 대상자들은 사전에 보훈처와 중소기업청, 각 지방자치단체가 추천한 장애인이나 국가유공자, 중소기업 근로자 등으로 입주가 사실상 확정된 이른바 ‘보금자리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두 다리가 없는 이 씨는 1급 장애인으로 집에서 팔찌나 목걸이 등을 조립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다.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3학년 두 아들과 함께 이웃들과 화장실을 같이 쓰는 주택에 세 들어 살고 있다. 무주택만 20년째다. 그는 ‘특별공급대상에 선정돼 하남지구의 84m² 아파트를 받게 됐다’는 동사무소의 연락을 받고 홍보관을 찾았다. 그러나 그는 “3.3m²당 970만∼1000만 원 정도로 총분양가는 3억 원이 넘고, 계약금이 3000만 원 정도”라는 상담원의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얼굴을 들지 못했다.

“계약금을 언제까지 내야 한다고 했죠?”

이 씨는 상담원에게 계약금 납부 마감일을 몇 차례 더 확인한 뒤 목발을 짚고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씨는 2층에 마련된 84m² 견본 주택으로 향했다. 견본 주택 안에서 그는 목발을 짚을 때 힘을 주느라 두꺼워진 팔을 천천히 들고 주방가구와 침실의 옷장 등을 쓰다듬었다. 그는 아이들 방과 그 맞은편에 위치한 화장실 앞 복도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공용화장실을 쓰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니…”라며 “시간이 좀 남아있으니 무슨 일을 해서라도 계약금을 마련해야지”라고 말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7∼9일 실시한 기관추천자 특별공급에서 공급물량 1049채 가운데 84%인 877채만 신청돼 172채가 미달됐다. 예상했던 결과다. 이 씨는 당시 “주변에서 축하한다면서도 부러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2억, 3억 원이라는 돈이 어디 있나’라는 자조 섞인 말을 들었을 것이다.

정부가 공공성을 위해 후손들에게 물려줄 그린벨트를 풀어 만드는 보금자리주택. ‘너무 싸다’며 앞 다퉈 청약전쟁에 뛰어들고 있지만 일부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이번만큼은 여력이 없는 계층에 좀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갈 수 있는 대안을 정부가 찾아냈으면 한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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