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한 타워형 주상복합아파트에 사는 주부 김모(55) 씨는 요즘 고민에 빠졌다. 처음 이 아파트에 입주할 때만 해도 웅장한 외관과 호텔 같은 분위기 덕에 주변의 부러움을 샀지만 살아보니 불편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김 씨는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초고층의 매력에 반해 이 집을 구매했지만 실제로 살아보니 문제점이 있었다”며 “요리를 하면 냄새가 잘 빠지지 않는 데다 통풍이 잘 되지 않아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고 말했다. 김 씨는 최근 인근에 분양하는 아파트를 눈여겨보고 있다. 이사를 하기 위해서다. 김 씨가 아파트를 선택하는데 중요한 고려사항 중의 하나가 판상형 아파트 여부다.
● “외관은 멋있지만 살아보니…” 타워형 아파트의 좌절
화려한 외관과 차별화된 평면으로 인기를 끌던 타워형 아파트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 2000년 이후 아파트 디자인이 중시되면서 화려한 외관의 타워형들이 인기를 끌었다.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목동 하이페리온, 신천동 롯데캐슬골드 등이 대표적이다. 타워형 아파트들은 독특한 평면구조 설계가 가능하고 동,서,남향 등 다양한 방향으로 건설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 개 층에 3, 4채의 가구를 둥글게 배치해 남향 세대가 부족하고, 앞뒤면 발코니 설치가 어려워 통풍이 잘 되지 않는 등의 단점이 있다. 밀폐형 유리 외벽으로 시공해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워 관리비가 많이 들고 분양가도 비싼 단점이 있다.
● 모양보다 실속…‘성냥갑 아파트’ 판상형 새 바람
타워형의 인기가 식으면서 ‘성냥갑 아파트’라고 불리는 판상형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판상형은 전 가구 남향 배치가 가능하고 남북으로 창을 만들어 통풍이 잘된다. 건축비도 타워형에 비해 저렴하다. 반면 단조로운 외관과 조망권 확보가 어렵고 동간 거리에 의해 일조권이 크게 좌우되는 단점이 있다.
소비자들은 4베이(방 셋과 거실을 전면에 배치) 평면을 도입한 판상형 아파트를 선호하고 있다. 같은 단지 내 같은 면적이라도 판상형의 청약 경쟁률이 더 높다. 대우건설이 6월 용인시 기흥구에서 분양한 ‘기흥역 센트럴 푸르지오’는 판상형인 84m²A1형이 타워형 84m²B1형보다 청약경쟁률이 높았다. 84m²A1형은 1순위에서 56.11대 1을 기록한 반면 84m²B1은 2순위에서 2.31대 1로 마감된 것이다. 7월 입주를 시작한 서울 은평구 녹번동 북한산 푸르지오는 아파트 형태에 따라 3000만원 이상 시세차이가 난다. 같은 85m²형일지라도 판상형은 5억6000만원 이상, 타워형은 5억300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 “수익보다 분양”…건설사들도 판상형 아파트 건설 붐
건설사들은 한 동에 더 많은 가구를 지을 수 있는 타워형 아파트가 수익성이 높지만, 판상형이 분양 흥행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판상형 아파트를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국내 뉴스테이 1호인 ‘e편한세상 도화’아파트는 약 97%를 판상형으로 배치했으며 평면도 수요자들이 선호하는 남향 위주의 4베이 구조다. ㈜동일은 경기도 고양시 원흥공공택지지구에 ‘고양 원흥 동일스위트’를 최근 분양했다. 4베이 판상형 구조의 평면 설계로 우수한 공간 활용도와 넓은 서비스 면적을 제공한다. 남향 위주의 배치를 통해 일조량을 극대화한 덕분에 모든 평형이 완판됐다. SK건설이 이달 서울 대치동에 선보이는 ‘대치 SK VIEW’도 전 가구 판상형으로 설계했다. 한화건설이 부산시 동래구에서 분양할 예정인 ‘동래 꿈에그린’도 전 가구 남향위주 배치, 4베이, 판상형 등 최신 트랜드를 반영했다.
부동산홍보전문업체 더피알 정동휘 본부장은 “수요자들이 채광과 맞통풍을 중요시해 타워형보다는 판상형을 선호하는 추세”라며 “지난해부터 판상형과 탑상형이 혼합된 아파트가 인기를 끌었고, 최근에는 판상형으로 설계한 아파트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