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홍권희기자] 겉보기에 낡기는 했지만 아직 꽤 쓸만한 생산시설들, 헝가리와 달리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외채규모, 폴란드와 달리 아직 희망있는 농업분야…. 시장경제 전환 성적표를 보면 체코는 중동구의 선두주자임에 틀림없다. 95년 우리나라보다 1년 앞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것을 두고 체코인들은 『개혁성과에 대한 대외공인』이라고 자부한다.
체제전환 초기부터 대(對)서방접근에 열중이었던 체코는 지난해 상징적인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것은 바로 독일∼체코를 잇는 「잉골스타트」 파이프라인으로 서방의 원유를 공급받게된 것. 그래서 러시아∼체코간 「드루스바」 파이프라인에만 의존하던 상태에서 벗어났다.
정부관계자는 『우리는 그동안 러시아산 원유만을 써왔으나 이제는 질좋은 서방원유도 공급받게 됐다』며 『이런 변화는 정유산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체코 수입시장에서 유럽연합(EU)상품의 점유율은 93년 40%남짓하다가 작년에 70%에 육박하게된 것도 그런 변화다.
철도와 도로도 마찬가지다. 지리 나브라틸 교통부차관보는 『오는 2003년 완공을 목표로 EU와 연결하는 교통망 확충공사가 상당히 진척됐다』고 설명한다. 이런 노력 덕택에 체코는 올7월 마드리드에서 열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정상회담에서 폴란드 헝가리와 함께 새회원국이 될 전망. 또 중동구국가중 EU회원국 후보 1순위로 꼽힌다.
▼ 원유파이프 獨과 연결 ▼
체코에선 EU 여러나라 중에서도 독일의 경제적 영향력이 막강하다. 정부는 무역 및 투자의 독일의존도를 줄이려하지만 독일비중은 25∼30% 선을 유지한다. 독일과 체코는 역사적으로 서로 구원(舊怨)이 많은 나라. 나치침공으로 체코가 큰 피해를 보았고 나치가 패망할 때 체코는 주테텐란트에 이주해 살던 독일인들을 그대로 내쫓아 재산권 등 분쟁이 그치질 않은 사이다. 그런 두 나라 총리가 지난달 중순 「화해선언」을 했다. 앞으로 국제무대에서 독일의 적극적인 체코 지원이 예상된다.
체코의 EU지향은 경제규모가 작은 약점을 딛고 유럽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이점을 살려나가자는 포석. 특히 사유화를 마친 기업들이 생산구조를 재편해 제대로 가동되기 위해선 향후 5∼7년간 1백억달러 이상의 외국인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코메콘 체제하에서 노하우를 축적한 기계 항공 레이더 전력 자동제어 등 주요산업분야의 원천기술을 상업적으로 활용하고 수출마케팅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서구기업들과의 산업협력이 절실한 때문이다.
▼ 89년 「비단혁명」에 냉소 ▼
체코는 체제전환의 후유증을 이겨내고 지난 94년 처음으로 플러스성장을 기록했다. 올해부터 5년간 4%대의 실질성장, 7∼8%대의 소비자물가상승률, 1달러당 27∼29코루나로 안정된 환율 등 낙관적 전망이 이어진다.
그러나 체코의 「희망의 봄」은 끝났다는 지적도 많다. 범죄와 부패 때문이다. 대중들은 89년의 「비단혁명」을 빗대어 『혁명의 비단은 모피담요만도 못하게 퇴락했다』고 비꼰다. 클라우스총리의 자존심에 해당하던 금융기관 11개가 지난해 부도로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증시도 제도미비와 내부자거래 때문에 외국투자가들은 바르샤바로 옮아가고 있다.
프라하는 「관광객들과 9개국의 25개 재벌에 팔려간 신부」라는 비난도 받는다. 미국만을 모델로 한 변혁과정의 승자와 그들이 드리운 그림자가 교차하는 도시라는 지적을 이겨내야 하는 과제도 떠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