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에세이/21세기 앞에서]영화감상과 「입체사고」

  • 입력 1997년 5월 26일 20시 24분


경영이 무어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라고 하면서 경영이든 일상사든 문제가 생기면, 최소한 다섯번 정도는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원인을 분석한 후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자기 중심으로 보고 자기 가치에 의존해서 생각하는 습관을 바꿀 것을 권한다. 한 차원만 돌려 상대방의 처지를 생각하면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 나무심으며 숲을 생각 ▼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처럼 모든 환경이 초음속에 비견될 정도로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동일한 사물을 보면서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는 「입체적 사고(立體的 思考)」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본다. 입체적 사고가 습관이 되면 「일석이조(一石二鳥)」가 아니라 「일석오조(一石五鳥)」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나무를 심을 때 나무 한 그루만 심으면 그 가치는 몇 십 만원에 지나지 않지만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면 목재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홍수방지 공해방지 녹지제공 등 여러 효과를 거두게 되고 재산가치도 커진다. 나무를 심더라도 숲을 생각하는 것, 이것이 입체적 사고이자 소위 1석5조일 것이다. 사실 과거에는 1석2조만 해도 성과가 높다고 인정받았으나 이제는 최소한 1석5조는 돼야 살아남을 수 있다. 변화의 폭이 넓고 빨라지는 시기에 단품(單品)이나 단일 업종만 갖고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든 것처럼 단일 목적만으로는 환경에 대응하기 어려워진다. 더구나 선진국가를 뒤쫓아가는 우리의 처지에서 한 가지 목적, 한 가지 효과만을 생각해서는 결코 그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몸에 밴 평면적 사고의 틀을 단숨에 바꾸기는 어렵다. 일상의 주변에서 쉬운 것부터 찾아 사물의 본질을 생각하고 다각적으로 분석하는 훈련이 필요한데 그 훈련의 한 방법으로 조금은 특이하게 들릴 영화감상법을 권하고 싶다. 영화를 감상할 때는 대개 주연 쪽으로 기울어서 보게 된다. 주연의 처지에 흠뻑 빠지다 보면 자기가 주인공인양 착각하기도 하고 주인공의 애환에 따라 울고 웃는다. 그런데 스스로를 조연이라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면 전혀 색다른 느낌을 받는다. 나아가 주연 조연뿐 아니라 등장 인물 각자의 처지에서 보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의 인생까지도 느끼게 된다. 거기에 감독 카메라맨의 자리에서까지 두루 생각하면서 보면 또 다른 감동을 맛볼 수 있다. 무슨 영화를 그렇게까지 골치 아프게 보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보면 평면의 스크린 위에 비치는 영화가 입체적으로 보이면서 등장인물들의 인생관이 느껴지고 작가의 철학을 알게 되는 것을 어쩌겠는가. ▼ 조연 입장에서 보자 ▼ 그저 생각없이 화면만 보면 움직이는 그림에 불과하지만 그처럼 여러 각도에서 보면 한 편의 소설, 작은 세계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영화를 보면 처음에는 무척 힘들고 바쁘다. 그러나 그것이 습관으로 굳어지면 입체적으로 보고 입체적으로 생각하는 하나의 「사고의 틀」이 만들어지고, 음악을 들을 때나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 또 일을 할 때에도 새로운 차원에 눈이 떠지게 된다. 이건희(삼성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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