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기업을 경영하려면 돈 사람 설비 기술이 필요했었다. 이들이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주된 경영자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만으로는 다른 기업과 차별되는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어렵게 됐다. 바로 시간이 새로운 경영자원으로 부각됐고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기업경영의 요체가 됐다.
▼ 때 놓치면 헛수고 ▼
그동안 우리는 자본이나 기술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시간이라는 경영자원을 적절히 활용, 짧은 기간내에 고도성장을 이룩한 신화를 만들어냈다. 남들이 쉬고 있을 때 우리는 더 열심히 일함으로써 남보다 빨리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우리 건설업체가 해외에서 횃불을 켜놓고 밤샘공사를 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공기단축과 돌관작업은 한국건설업체의 트레이드 마크로 정평이 나 있다.
반도체산업이 세계 정상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도 남들은 2년씩이나 걸리는 공장 건설을 우리는 반년만에 끝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빨리 경쟁력」을 갖게 된 것은 근면과 그것을 촉발한 헝그리 정신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빨리」만으로는 안 통하는 세상이 됐다. 국제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우리의 「빨리 경쟁력」을 후발개도국이 답습, 추격해 오고 있다. 우리 자신 또한 빈곤탈출의 결과로 과거와 같은 근면성을 계속 유지하기가 힘들게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시간 경쟁력의 질적 차원을 한단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바로 「빨리의 개념」을 기회를 선점하는 「먼저의 개념」으로 전환해야 한다.
나는 10년전 삼성의 제2창업을 선언하면서부터 기회선점 경영을 특별히 강조해왔다. 기술과 자본력에서 훨씬 앞서 있는 미국 일본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시간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경영 1기 3년 동안에는 질 중심 경영을 강조해 왔지만 신경영 2기에는 「먼저」 「빨리」 「제때」 「자주」의 스피드 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반도체산업이 그 좋은 모델인데 내 자신이 직접 타이밍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남보다 먼저 개발하고 생산하기 위해 시간과 피나는 싸움을 벌여 왔다.
▼ 「上之上」의 경영전략 ▼
아직도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볼 때는 「먼저의 개념」이 미흡한상태에있다. 하지만반도체나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디지털전화와 같은 몇몇 분야에서는 세계시장 선점의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 반도체분야에서는 세계 최초로256메가D램 1기가 D램을 개발했고 CDMA 분야에서는 모토롤라보다도 먼저 상용화기술을 개발했다.
손자병법에서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상지상(上之上)전략을 경영에 도입하면 결국 남보다 먼저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고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기업경영의 승패는 시간자원을 누가 더 먼저, 누가 더 빨리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시간을 지배하는 자에게 미래가 있다. 지난 고도성장기에 우리의 장점으로 작용했던 「빨리의 시간 경쟁력」에서 벗어나 「먼저의 시간 경쟁력」을 갖추는데 총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 기업의 새로운 지평이 될 것이다.
이건희<삼성그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