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1취(趣) 1예(藝)」는 있어야 삶의 질이 윤택해진다고 얘기하면서 애견을 키워보라고 권한다. 사실 젊은 시절 정력적으로 일하던 사람이 은퇴한 다음에 정신적 허탈감에 빠지는 것은 은퇴 후에 즐길 수 있는 자기만의 세계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6.25전쟁이 막 끝났을 무렵 부친의 손에 이끌려 일본으로 건너가 거기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혼자 있다보니 개가 좋은 친구가 됐고 사람과 동물간에도 심적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 동물과 마음의 대화를 ▼
그후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귀국했는데 당시에는 반일(反日)분위기가 매우 팽배해서 일본에서 갓 돌아온 나는 학교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개를 더욱 가까이 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항상 애견을 길러왔다.
20 몇년 전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진도개가 천연기념물 53호로 지정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세계견종협회에서는 진도개의 원산지가 한국임을 증명해 주지 않았다.
요구조건이 까다롭기도 했지만 확실한 순종(純種)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사실을 알고는 곧바로 진도에 가서 사흘을 머물며 장터에도 가고 또 순종이 있다는 이 집 저 집을 찾아 30마리를 사왔다.
그리고 사육사와 하루종일 같이 연구하고, 외국의 전문가를 수소문해서 조언을 받아가며 순종을 만들어내려고 애썼다.
처음 들여온 30마리가 1백50마리로 늘어날 때쯤 순종 한 쌍이 탄생했고, 마침내 79년 세계견종협회에 진도개를 데리고 가서 한국이 원산지임을 등록시킬 수 있었다.
나는 아무리 취미생활이라도 즐기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깊이 연구해서 자기의 특기로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취미를 통해서 남을 도와줄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일 것이다.
지금 아이들을 보면 보호받는 데만 익숙해 있지, 남을 보호하거나 남에게 베풀 줄은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어린이들이 애견이든 새든 동물과 교류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동물을 키우다보면 말 못하는 동물의 심리를 읽어야 하기 때문에 남을 생각하는 것이 저절로 몸에 밴다. 또 어미로부터 새끼를 받아내고 키우는 과정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내년 어린이날에는 몇 만원씩 한다는 외제 장난감을 사주기보다 강아지 한 마리, 새 한 쌍을 선물하면 어떨까.
▼ 어린이날 강아지 선물 ▼
지난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유럽 언론들이 한국을 「개를 잡아먹는 야만국」으로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 보도가 나가자마자 영국 동물보호협회가 대규모의 항의시위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한국상품의 불매운동으로까지 번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민끝에 그 동물보호협회 회원들을 서울로 초청했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개를 기르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고 애완견 연구센터, 맹도견(盲導犬)학교 등 우리나라의 애견문화 수준이 녹록치 않음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인지 다행히 시위계획이 취소되었고 더 이상의 항의도 없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