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2년 러시아의 옐친 대통령이 삼성전자를 방문했을 때, 자동화 라인을 둘러보다가 『자동화 체제를 갖추면 사람이 필요 없겠다』며 매우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나는 『그래도 기업경영의 기본은 사람』이라고 답하면서 『자동화로 절감된 인력은 연구소나 창의성이 필요한 부문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전체 인력에는 변함이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 직원사기 고려할 필요 ▼
80년대부터 시작한 경영 합리화가 지금은 불황을 맞아 거의 모든 기업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런데 합리화 작업의 첫 단추는 대부분 인력감축부터 시작한다. 허리띠를 졸라매서 성과를 더 내겠다는데 반대하거나 싫어할 기업주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람을 물리적으로 줄이는 합리화에는 반대한다.
경영이 조금 어렵다고 사람을 줄여서 해결하겠다는 안이한 발상은 종업원들의 심리적 반발을 사고 그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뿐 회사발전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어떤 분야, 어떤 방식의 합리화도 작업자들이 편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만드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생산성은 저절로 올라가고 또 이것이 일하는 사람들을 자극해서 더 열심히 일하는 선(善)순환이 생긴다. 오로지 생산성만을 강조하면 작업자의 근로의식이 나빠질 뿐만 아니라 조직활력과 사기가 저하된다.
축구경기에서 옐로카드를 자주 꺼내는 심판도 레드카드만큼은 잘 쓰지 않는다. 경기의 흐름이 끊길 뿐 아니라 퇴장 당한 선수의 앞날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90분 동안의 경기도 이러한데 몇십년, 몇백년을 계속 이어나가야 할 기업에서 레드카드를 자주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합리화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조직과 선진국의 조직을 비교해 보면 그것이 국가든 기업이든 학교든 전 분야에서 50% 정도의 비효율이 보인다.
그리고 아무리 효율적인 조직이라도 그 속에 불필요한 일이 30% 정도는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합리화는 쉬임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합리화에는 필연적으로 인력감축이 수반되게 마련이다.
합리화의 관건은 사람을 줄이기 이전에 줄일 사람들을 어떻게 교육시켜 어느 곳에 활용할지부터 계획하는데 있다.
▼ 직무전환 교육 우선 ▼
일례로 공장합리화로 사람이 남게 되면 자회사나 협력업체의 현장 지도요원으로 파견할 수도 있고, 다른 일을 해보겠다는 사람에게는 거기에 맞게 직무전환교육을 시킨 후 그 일을 맡길 수 있다.
신규사업을 시작할 때에도 기존 사업분야에서 발생하는 여유인력 활용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많은 문제점에 봉착하게 된다.
개인들 역시 지금처럼 환경의 변화가 급박하고 기술이 빠르게 진보하는 시대에 한 곳에서 하나의 직무에만 매달리겠다는 생각은 이제 불가능하게 됐음을 알아야 한다. 한 사람이 여러개의 직무를 동시에 할 수 있어야 하고 또 몇 년간 해왔던 직무와는 전혀 다른 직무를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떠한 곳에서 어떠한 일을 맡아도 처리할 수 있는 전방위(全方位) 대응 능력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이건희<삼성그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