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리 유망한 업종이라도 상권과 궁합이 맞아야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죠.” 전업주부로 10년간 두 자녀를 키우다가 지난해 10월 창업에 뛰어든 김은숙 씨(40)는 1년 동안 롤러코스터 같은 부침을 겪었다. 김 씨가 창업 대열에 나선 것은 자동차부품회사에 다니는 남편이 자주 퇴사 얘기를 꺼내고 아이들도 학교와 학원을 오가느라 점차 엄마의 손길이 덜 필요했기 때문이다. 》 “외식업은 별다른 기술 없이도 성공할 것 같더군요.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전업주부가 외식업 사장으로 변신해 성공한 모습이 나오니까 나도 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생겼죠.”
김 씨는 업종설명회와 박람회를 쫓아다니면서 창업정보를 쌓았다.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와 업체 담당자의 얘기를 비교하면서 수익성을 기준으로 유망한 업종을 찾는 데 골몰했다. 치킨전문점, 호프전문점, 국수전문점을 놓고 고민하다가 국수전문점을 운영하던 지인으로부터 “각종 파동의 영향이 적고 수익성이 35% 이상”이라는 말을 듣고 국수로 맘을 정했다.
김 씨는 유동인구가 많은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에 약 46m² 규모의 매장을 얻고 1억4000만 원을 투자해 국수전문점을 열었다.
오픈 초기 덮밥과 국수를 접목한 메뉴의 장점 때문인지 하루 80만 원 이상 매출을 올렸다. 오픈 이후 한 달간 적극적인 홍보도 펼쳤다. 행운권 추첨을 통해 제주도 항공권, 무료시식권, 고급 명함첩을 제공하고 전단도 많이 돌렸다.
그런데 오픈 두 달째부터 서서히 매출이 줄기 시작하더니 3개월 이후에는 하루 매출이 40만 원대로 떨어졌다. 정직원 1명과 아르바이트 직원 6명의 인건비가 부담될 정도였다. 김 씨는 직원을 점심과 저녁으로 나눠 배치하고 주말에는 아예 남편과 단둘이 매장을 지켰다. 하지만 매출이 늘지 않으니 인건비를 줄여도 희망이 없어 보였다.
결국 창업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은 김 씨는 그동안 업종과 상권의 궁합을 간과했다는 점을 알게 됐다. 김 씨의 점포는 오피스 상권이지만 골목 안쪽에 있어서 고객이 매장을 알고 일부러 찾아와야 하는 자리였던 것. 국수전문점은 분식업이지만 배달 수요가 없기 때문에 유동인구가 많은 거리 전면에 점포를 두어야 하는 업종이었다.
김 씨의 국수는 맛도 뛰어나고 재료도 좋았지만 사람들은 골목 안에 있는 국수전문점을 일부러 찾아오지 않았다. 입지의 약점을 극복하려면 끊임없이 홍보를 해야 했는데 국수라는 품목이 흔하다 보니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기도 어려웠다.
전문가는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업종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매장 규모가 작고 골목 안쪽에 있으니 배달이나 단체 주문, 테이크아웃이 많은 업종이라면 금상첨화라는 조언도 곁들였다.
고심하던 김 씨가 다시 택한 업종은 수제 도시락 전문점인 ‘벤또랑’. 바쁜 직장인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도시락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매장 주변 500m 이내에 있는 10여 곳의 면요리 전문점과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업종 전환에 따른 비용이 부담스러웠지만 투자금을 고스란히 날리고 폐점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했다.
김 씨는 올 3월 국수전문점을 접고 기존 시설을 최대한 살려서 매장을 리뉴얼했다. 메뉴, 간판, 점포 내부 벽면만 조금 손을 봤다. 일본식 수제 도시락을 택해 맛과 모양을 모두 고급스럽게 했다. 도시락에 꽃이 피어난 것처럼 색색의 화려한 재료를 담자 고객이 몰리기 시작했다.
한 달도 안 돼 이색적인 맛집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차를 타고 매장을 찾아오는 고객까지 생겼다. 그 덕분에 고객 비율 40%의 직장인 외에도 인근 주민, 상인과 20대 대학생까지로 넓어졌다. 미리 주문해서 사무실로 가져가는 테이크아웃 비중도 17% 정도 됐다. 전체 테이블 회전은 6.5회를 넘었다. 점심에 매출의 80%가 몰리는 국수전문점과 달리 저녁 장사도 잘돼 저녁 매출의 비중이 52%까지 올랐다.
김 씨는 매장의 성공 비결을 이색메뉴라고 말했다. 김 씨 매장에서 내놓는 ‘벤또’는 일본 전통 목기인 ‘사와라’에 초밥과 각종 튀김류, 절임류를 얹어서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한 간편식. 두 번째 성공 비결로는 조리의 간소화를 꼽았다. 초보 조리사 2명이면 운영이 가능해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김 씨는 매장 한편에 고객의견 수렴함을 설치해 고객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첫 달 80만 원이던 하루 매출이 두 달째부터 160만 원까지 수직상승한 비결이다.
수렴함에는 식사량을 늘려 달라는 의견부터 생소한 음식이니 먹는 법을 알려 달라는 것까지 다양한 의견이 들어왔다. 김 씨는 원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밥과 절임류 반찬을 무한 리필해 식사량을 늘렸고 식사하는 법이 자세히 설명된 인쇄물을 테이블마다 비치했다. 인테리어 콘셉트처럼 바로 고칠 수 없는 건의사항은 가맹본사에 전달했다. 김 씨는 의견을 낸 고객의 이름과 조치 내용을 매장 입구 카운터 옆에 붙여 둔다. 고객들에게 ‘내가 만드는 가게’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김 씨는 향후 배달 서비스까지 도입해 매출을 20% 이상 올릴 계획이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 전문가 조언 매출 공백시간대 활용… 단체 주문 소화한다면… 매출 10%이상 늘릴수있어
창업 직후에는 다양한 마케팅 전략으로 원하는 매출 수준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매출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느냐이다. 소위 ‘오픈 허니문’이 지나 고객들의 관심이 식고 매출이 떨어지면 창업자 대부분이 좌절한다. 그 상태가 지속되면 아예 사업을 접는 경우가 많다. 창업 1년 이내 폐업률이 높은 것은 이 때문이다.
김 씨도 일시적으로 슬럼프에 빠졌으나 고객 의견 조사, 전문가 조언 등을 통해 상권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업종으로 전환해 폐업의 위기를 넘기고 성공 창업 반열에 섰다. 다만 지속적으로 매출이 오르면 자칫 자만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흔히 창업한 지 1년이 지나 일이 익숙해지고 매출이 높아지면 고객 서비스가 나빠질 우려가 있다.
김 씨 매장의 도시락은 평균 8000원대로 고급 도시락 수요자에 걸맞은 고객 및 품질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 식자재 관리와 조리 과정에 맞는 체크 항목을 표로 작성해 점검할 것을 권한다.
매출이 높을수록 종업원들의 노동 강도와 업무 피로도는 높아지므로 복지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현재 구성원들은 6개월 이상 손을 맞춰 업무 숙달도가 높다. 직원들에게 휴일을 꼬박꼬박 챙겨주지 못하는 상황이므로 브레이크타임 제도와 인센티브를 통해 장기근속을 이끄는 게 중요하다.
매출은 거의 포화상태이지만 단체 주문을 통해 높일 여지가 있다. 오전 11시 이전이나 오후 3시 이후가 한가한 편인데, 이런 여유 시간을 이용해 예약 도시락 주문을 소화한다면 매출을 10% 이상 올릴 수 있다. 단체 주문 홍보는 근처 오피스를 대상으로 하고, 전단이나 사은품을 활용하는 것이 효과가 높다.
지금도 트위터를 통해서 유입되는 고객이 많은 편인데 향후에도 소셜커머스 마케팅 사이트를 이용해 멀리서 찾아오는 마니아를 확보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배달 서비스 도입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인력 운영 문제와 테이크아웃 매출의 하락 등을 염두에 두고 정확한 데이터를 확보한 뒤 시행을 결정해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