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 시누이가 있습니다. 저는 잘 지내보려고 하지만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생각보다 그렇게 원만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시누이는 결혼한 지 얼마 안되는 저희 부부의 가족계획문제까지 은근히 간섭하려고 합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을 요즘 실감하고 있습니다. ‘시’자가 붙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얼굴에 스마일마크만 찍으면서 살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커지는 경우는 역설적으로 아주 이를 악물고 잘 지내보려고 하는 경우입니다.
‘나는 시집가서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실컷 싸우면서 씩씩하게 지내볼거야.’
이런 생각을 하는 경우에 오히려 갈등이 적을 수도 있는 걸 보면 인생이란 참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기도 합니다.
시누이가 가족계획 문제까지 간섭하려고 든다고 신경을 곤두세우기 보다는 그저 가까운 사람의 의사표시 정도로 받아들이면 어떨까요. 우리가 지하철을 탔을 때를 가정해 봐요.
“무슨 소리야, 딸이 꼭 있어야지.”
지하철에 탄 옆사람끼리 이 같은 얘기를 주고 받는다고 해서 그 사람을 물어뜯으려고 덤비지는 않으니까요.
화가 날 때도 잘 지내보려고 겉으로 스마일마크를 하고 있는 것은 좀 위험한 일이죠. 화나거나 언짢을 때는 솔직하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사실은 잘 지내는 비결입니다. 주의할 점은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고 내 감정을 표시하는 것이겠지요.
제일 좋기야 황수관박사처럼 늘 웃고 있다면 ‘시’자 붙은 사람들을 만날 때도 그 얼굴을 그냥 살짝 보이면 될테니까 아무 문제도 없겠지만요.
우애령(작가·카운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