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코리아/앨런 팀블릭]나는 한옥 지붕 곡선에 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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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6일 03시 00분


한국의 국가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요전에 치과에 갔을 때의 일이다. 입을 크게 벌리고 처치 의자에 앉아 있던 나는 내 입 안에서 벌어지는 소동에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했다. 그래서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에 그치지 않는, 각각의 이미지와 그 이미지가 통합되어 전체와 조화를 이루어가는 이치에 대해 골몰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이따금 가죽 냄새(비시각적 이미지)를 맡으면 나는 1940년대 여동생과 함께 독일에서 통학하던 크고 검은 통학버스를 문득 떠올리게 되는데 이 이미지로 인해 기억 저편으로 밀려 가물가물하던 어린 시절의 또 다른 추억이 꼬리를 물고 떠오르곤 한다.

치과 치료가 끝나고 나서,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사려고 약국으로 가는 길에도 계속 이 상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내가 옛 서울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볼 수 있다면, 그때 이후 수십 년간 아마도 변하지 않은 모습은 분명 거의 없을 것이다. 옛 서울의 이미지는 나에게 노스탤지어(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내가 얼마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지 상기시키며 이 도시와 이 국가의 과거가 저편으로 밀려나 우리 곁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모습에 대한 후회와 슬픔을 가져왔다.

서울의 경우에는 어떤 계획하에 과거를 지워나간 것은 아니다. 1950년대에 전쟁을 치러야 했던 서울과 같은 도시에서 과거를 고스란히 간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소설에서처럼 시간차를 두고 서울의 같은 장소를 방문해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서울의 변화에 깜짝 놀랐을 것이다.

옛것 너무 쉽게 허무는 서울

유럽의 어느 도시를 방문하더라도 그 도시가 거쳐 온 모든 시대에서 전해진 건축 유산이 도시의 풍경 안에 녹아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건물을 신축하려면 외관은 기존 스타일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엄격한 통제를 받아야 한다. 오래된 건축물은 그 건축물의 역사적 미학적 중요성을 충분히 검토한 이후 승인을 받아야만 비로소 철거할 수 있다. 가치의 경중을 막론하고 각 시대의 건물은 보존된다. 종교적 영광을 기리고자 당대 최고의 건축 기술로 세운 수많은 교회는 오늘날 기독교인의 수가 줄어들기는 하였으나 그와 무관하게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심지어 무신론자조차 이들의 철거를 막기 위해 분투한다. 어느 도시의 과거 이야기는 각 역사적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대변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1970년대에 종갓집이 실질적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내가 태어난 곳 영국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아내였던 앤 해서웨이가 살았던 것과 같은 초가지붕 집이 천문학적 가격에 거래된다. 한편 한국의 아름다운 명소에는 서구 건축을 흉내 낸 기이한 디즈니랜드풍의 러브호텔이 들어차 있다. 1만 년쯤 후의 언제인가 고고학자들이 이 조각조각의 유물을 들고 21세기의 한국에서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유추하느라 고군분투할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한 국가가 고유의 자질을 바꾸는 데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한국은 새것은 좋고 오래된 것은 나쁘다는 수준까지 변화를 반기는 분위기다. 대부분의 주부가 한옥은 불편하고 깔끔하지 못하다고 여기고 사회적으로 낮아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100년 전에는 양반이나 살던 아름답고 품격 있는 곳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상당수의 외국인은 오히려 한국인보다 한국에서 거주하고 싶어 하며 특히 한국적인 모습을 간직한 한옥을 선호해 아파트 식의 거주형태를 단조롭고 지루하다고 여긴다.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과거를 해체해야 할 필요는 없다. 신구의 성공적인 조화의 사례가 바로 신식 한옥이다. 미적이고 세련되어 현대적 패션 스타일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마치 옷처럼, 건축물 또한 스타일이 잘 어울려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건축물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교두보와 같은 물리적 링크이다.

한국, IT 말고도 자랑거리 많아

한국은 자부심을 가져 마땅한 역사를 갖고 있다. 세계 국가 중에 자신만의 고유한 글자를 창조해 낸 국가가 몇이나 되겠는가? 한글을 만들어낸 창의성은 진정으로 독보적이다. 한옥 지붕의 곡선은 한국적 개성의 한 부분인 미적 인식과 품격 있는 취향, 스타일, 섬세함을 고루 반영하기에 한국적 이미지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고유의 특성이 있다.

나는 국가의 이미지란 외부에 드러난 것뿐만 아니라 국민이 스스로 자신의 국가에 대해 어떻게 여기는가를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경제적 능력과 기술적 진보에 대한 자부심도 꽤 타당하지만 국민이 자신의 과거를 부끄러워한다면 그들은 세계무대에 서서 “이것이 진정한 우리이다. 우리의 뿌리이고, 오늘날의 우리를 만들어낸 토양이다”라고 내세우기 어려울 것이다.

앨런 팀블릭 서울글로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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