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코리아/알란팀블릭]턱시도에 운동화 신은 듯한 서울

  • Array
  • 입력 2010년 6월 15일 03시 00분


많은 이가 드레스 코드(Dress Code)를 통해 사람의 교양이나 자라온 환경을 평가한다. 예를 들어 조선 양반의 상징인 한복을 입고 동시에 미국 카우보이모자와 고무부츠를 신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다지 생각이 깊은, 혹은 품위 있는 사람으로 비치지 않는다. 물론 예외는 있다. 간혹 유명 패션 디자이너가 상식을 깨는 조합의 의상을 연출해 입으면서 자신의 창의성이나 나름의 개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주로 그들이 속한 사회의 통념이나 가치에 맞는 옷을 입고 생활한다.

도시의 드레스 코드는 도시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오랜 전통을 지닌 역사적인 도시에서는 새로운 건물을 세울 때 기존의, 수백 년간 그곳에 있어온 고대의 유물과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루는 건물을 지으려 노력한다. 서울은 지난 100여 년의 역사 속에서 있어왔던 엄청난 변화만큼이나 시기별로 다양한 모습과 스타일을 지녀왔다. 특히나 건축양식과 시민편의 시설 면에서는 그 양상이 더욱더 두드러진다.

지금 우리는 세계의 이목이 서울과 서울의 환경에 집중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눈앞에 두고 있다. 국제적인 행사를 앞둔 서울의 드레스 코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좋은 기회가 아닌가 한다. 어색하거나 지저분한 모습을 세계에 보여줄지, 세련되고 깨끗한 모습을 보여줄지를 생각하자는 말이다.

세련된 도시 인상 망치는 전봇대

가장 먼저 우리 모두가 서울의 시민으로서 그에 맞는 시민정신을 보여줘야 한다. 거리에서 소리 내어 침을 뱉거나 500m 밖에서도 들릴 법한 큰소리로 떠드는 모습은 없어져야 한다. 또 뒤따라오는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닫아버리는 대신 문을 잠시 잡고 있는 배려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북적거리는 지하철역이나 백화점에서 낯선 사람을 밀치는 행동도 사라져야 할 모습 중 하나이다. 좁은 복도에서 “먼저 가세요”라고 말하는 아름다운 모습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이러한 행동의 변화 외에도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야 하는 도시 자체의 외향적인 변화도 있다. 더 발전되고 선진화된 모습을 추구하는 서울과는 어울리지 않는 다소 흉한 모습을 도시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울시민은 그런 모습에 벌써 익숙한 상태라 잘 알지 못하지만 외국인 관광객은 금세 알아볼 것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흉하고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란 온 도시에 서 있는 나무 높이의 콘크리트 전봇대를 말한다.

몇 해 전에 서울시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부탁받은 적이 있다. 주제는 외국인의 눈으로 보았을 때 서울이 고쳐야 할 모습이었다. 강의 준비를 위해 나는 카메라를 들고 도시 전역을 돌아다니며 촬영했다. 사진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전봇대 위에 이리저리 엉켜 있는 수많은 전선이 마치 정신 나간 까치가 틀어놓은 둥지같이 보였다는 사실이다.

도시 중심부에는 그나마 지중화 공사를 해 많은 전봇대를 땅속에 묻을 수 있었다. 서울을 세계 최고의 인터넷 도시로 만든 인터넷 광섬유 또한 땅속에 묻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도시의 뒷골목에서는 흉측한 전봇대를 볼 수 있다. 엄청나게 비싼 턱시도를 입고서는 허름하게, 다 낡아빠진 운동화를 신은 격이다.

도시가 흉해 보인다는 점 외에도 이런 전봇대는 다른 많은 문제의 온상이기도 하다. 애초에 이들은 횡단보도나 교통의 고려 없이 전기가 필요한 곳에 우선적으로 설치해 놓은 시설이다 보니 교통을 방해한다. 인도에 자리를 잡아 보행자를 불편하게 한다는 문제점도 있다. 그리고 이리저리 엉켜 있는 전선은 누가 보아도 사고의 위험이 가득하다.

이 모든 전봇대를 다 뽑아내고 지중화 공사를 통해 땅 밑에 묻는 일은 엄청난 비용이 든다. 그러나 큰 그림으로 본다면, 공사를 통한 이득의 관점에서 본다면 무조건 고개를 저을 일은 아니다.

G20 파티 전에 살펴야 할 것들

1990년대 서울 거리의 조명시설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가로등 시설도 열악하여 차량은 상향등을 켜고 운전을 해야 할 정도였다. 반대편 차로에서는 이 때문에 눈이 부신 경우가 다반사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상황은 더 심했다. 전방에 물체가 있는지 없는지, 특히나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분명히 알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이에 따라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엄청났다. 전기 사용이라는 편리가 한편으로는 인명 피해를 부른 격이라 하겠다. 물론 거리 조명시설을 제대로 갖추고 안전의식이 높아지면서 교통사고율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같은 이론을 현재의 전봇대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도시 외관을 아름답게 정비하는 일은 영원히 남을 유산이다. 다가오는 G20 파티를 위해서도 적절한 도시의 ‘드레스 코드’가 될 것이다.

알란 팀블릭 서울글로벌센터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