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코리아/인요한]의료관광 활성화의 장벽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18일 03시 00분


인요한(존 린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인요한(존 린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한국 사람이 한국 의료 좋다고 하면 당연하다고 여기겠지만, 저희가 이야기하니까 좀 믿을 만하지 않으십니까?”

1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한국의료관광 ‘U-헬스센터(Health Center)’ 기자회견장에서 이같이 말하자 러시아 기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미국인인 필자와 독일 출신 한국관광공사 이참 사장(국적은 한국)이 한국의료관광 홍보에 나섰으니 신선해 보였을 것이다.

U-헬스센터는 보건복지부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와 연세의료원이 합작해 해외에 만든 첫 원격진료센터다. 이곳에서 한국 의사를 통한 원격진료와 한국 의료관광상품 판매에 나선다.

연세의료원뿐 아니라 한국 의료계는 의료관광 활성화에 관심이 높다. 의료산업이 한국의 미래경제를 이끌어 갈 핵심 차세대 성장동력산업으로 각광받고 있기 때문이다. 철강 자동차 전자 조선 등 각 산업분야에서 한국기업이 ‘1위’ 기록을 세워가고 있지만 중국 인도 등 경쟁국이 맹추격하고 있는 만큼 의료 등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와 활성화는 꼭 필요하다.

하지만 의료관광 활성화를 위해서는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우선 한국 의료체계에 본질적 한계가 있다. 현재의 보험수가 체계에서는 정상적인 진료로 병원을 유지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산부인과 의사가 피부관리 시술을 하고, 환자의 의원 방문 횟수를 늘리기 위해 의사가 항생제를 3일 이상 처방해주지 않는다. 많은 의원이 건강보험 청구 담당 직원을 두고 건강보험을 통해 어떻게 수입을 많이 올릴지 연구한다. 그 결과 중소병원은 몰락하고 초대형 병원만 살아남고 있다. 초대형 병원에 환자가 몰리면서 의사는 2, 3분에 한 명씩 환자를 본다. 양질의 진료를 하고 싶어도 시간이 부족해 그럴 수가 없다.

한국 진료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환자들이 이런 의사를 신뢰할 리 없다. 외국인 환자는 항생제를 필요한 만큼 한꺼번에 처방받기를 원한다. 각종 검사나 치료에 대해서도 상세한 설명을 요구한다. 하지만 미국 의사보다 많게는 10배의 환자를 보는 한국 의사들은 외국 환자에게 긴 시간을 내주기 어렵다.

의료관광의 범위를 ‘치료’에만 집중하는 시각도 문제다. 외국인 환자와 그들을 진료하는 의사 사이에는 ‘그랜드 캐니언’이 있다. 외국 환자가 한국에 와서 진료를 제대로 받고 가려면 의료기술뿐 아니라 그들과 보호자가 묵을 숙소, 식사, 언어의 문제 등 치료 외 부분 역시 함께 발전해야 한다. 의사뿐 아니라 환자를 유치해 오고 그 외의 문제를 도울 에이전시 회사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관광산업 등 기타 서비스업이 함께 발전할 수 있다.

태국의 외국 환자 치료 관련 사업은 연간 2조 원 규모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은 1000억 원도 안 된다. 한국 대학입시에서는 의대가 최상위권에 랭크될 정도로 우수한 인재가 몰린다. 그 결과 길러진 의사들의 기술 역시 대단히 높다. 한국의 의료관광산업 규모가 작은 것이 태국 의사보다 한국 의사가 뒤처지기 때문은 아니다.

의료관광 활성화 주장에 곱지 않은 시각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다. 아마도 “아픈 사람을 갖고 돈을 벌려 하느냐”는 유교 문화에 바탕을 둔 시각인 듯하다. 하지만 의료관광이 활성화된다고 해서 소외계층이 더욱더 소외될 것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외국인 의료관광객을 유치해 돈을 더 많이 벌고, 그 돈을 소외계층에 대한 공적 의료 확충의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인요한(존 린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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